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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내 인생

삶을 부정하지 말자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선택지의 유혹 앞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런저런 제약과 구속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억압이나 구속은 그 자체로 자유와 반대되는 상태가 아니라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이 가동되는 출발선에 불과하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 본문 中




관악구에서 갱년기여성을 상대로 무료로 실시하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지난주에 참여했다. 직장 생활할 때는 관심도 없었던 프로그램을 이제는 검색하고, 찾아 신청하고, 이렇게 참여도 하는 나 자신이 신기하다. 일명 '숲 속에서 토닥토닥'.. 단어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었을까, 웃음이 났다.



물병 하나만 챙겨 오라는 지시대로 가볍게 산으로 향했다. 기대감에 약속보다 1시간 일찍 관악산으로 접어드니 밤새 대지에 내려온 신선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날갯짓을 연습하며 엄마를 부르는 작은 새들의 소리, 습기가 마르며 날리는 풀내음이 입구서부터 부드럽게 내 귀와 코를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던 것 같다. 초여름의 산은 초록의 스팩트럼이 공존하는 잔칫집 같다.  꽃이 없어도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다. 독촉하는 일행이 없으니 혼자 하는 걸음에 여유가 넘쳐난다.


일찍 도착한 탓에 성주암에 들리기로 마음을 먹고 올라 가는데 경사로가 만만찮다. 혹여 부처님에게 가려다 포기하려는 행인을 위해 쉬엄쉬엄 오르라는 격려 글귀가 용기를 준다. 영리하시다.



마침내 성주암에 도착하니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쁘다. 따라 오르던 신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사로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발아래로 펼쳐진 전경이 보상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성주암 관세음보살상에 엎드려 친정엄마를 위해 기도드렸다. 평생 남편과 아들만이 삶의 주인이었던 엄마는 지금 편안이 쉬고 계실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엄마는 천주교를 믿으셨지만 대자대비한 보살님이시니 이해해 주시겠지.



치유센터에 도착하니 지도사님이 반겨주셨다.  산림치유의 목적은 질병의 치료행위가 아니며 숲에서 얻는 치유활동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나와 같이 갱년기를 겪고 있지만 친화력 갑인 웃음기 넘치는 아줌마들이었다. 지도사님은 서두르지 않으며 '소리길' 코스를 걸으셨다.  야생에서 자라는 토종 허브꽃들을 하나하나 찾아주며 만져보게 하고 냄새를 맡게 하셨다.  "향기가 주는 기억은 오래 남거든요."



'소리길' 코스는 맨발로 걷기에 좋았다. 처음 만났던 굴참나무, 철쭉나무, 각종 허브풀들이 마냥 신기했다.

지도사님은 느릿느릿 새겨 외우라는 듯 주문처럼 우리에게 속삭이셨다.


"하늘을 보세요.  하늘을 가릴 듯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시죠? 그런데 곱게 일직선으로 뻗은 나무가 하나도 없어요. 그 어떤 나무도 편하게 자란 것은 없답니다.  나무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편하게 살지는 않았네요. 그러니 우리 삶이 힘들고 억울해도 지금껏 견뎌오고 걸어온 자신을 사랑해 줘야 한답니다."


그리고 스스로 양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토닥토닥해주라고 말했다.  뭉클했다. 우리는 나무를 끌어 안기도 하고 나무를 등지고 앉아 몇 분간 명상을 했다. 귀를 숲에 맡겼고 자연이 치유하는 시간을 즐겼다. 무엇이 들리냐고 묻는데, 어느 분의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나와서 놀랐다.  햇살이 따가워 나무가 웃는 소리라니!


나는 숲 속 치유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유로운 마음을 느꼈다. 진정한 삶의 자유는 무엇일까. 자유는 단지 구속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본연의 내 모습을 찾고 주체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30여 년간 함께 했던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몇 년에 걸쳐 한꺼번에 잃었다. 그것은 충격적인 불행이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삶의 필연적인 시간들을 인정하면서 남은 내 삶을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삶을 부정하지 않겠다.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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