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세상. 우리는 누군가의 SNS에 비친 모습, 사진 속 웃음, 짧은 영상 속 말투와 표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타인의 기준으로 나도 나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은 내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코 누구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한순간 스쳐 가는 등장인물일 뿐이다. 내가 웃던 찰나, 내가 도와 주었던 어느 날, 함께 걷던 그날의 바람처럼, 사람들은 나를 조각처럼 기억한다. 결국 인생이란 타인과의 '순간'을 살아내는 일이다.
읽기 편하고 당연한 의미의 글들이 많았지만 내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던 문장이다.
저자 이해인 씨는 사람을 남기고 관계를 바꾸는 것은 '다정함'이라는 태도라고 말한다. 든든한 내편을 만난 기분이랄까. 나는 '다정함'이라는 단어를 유독 좋아하는 편이다. 다정한 것은 경계하지 않아도 되고 불편하지 않아 좋다. 예의를 담아 대해주기에 쉽게 웃을 수 있고 내 마음을 편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안전하게 느낀다. 사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호모 사피엔스(조지프 헨릭 저)'는 인간이 최상위 지배종이 된 이유를 전방위적으로 탐구한 책으로써 인간은 친화력(다정함)이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하여 진화되었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맞춤에 의존해 살아가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 증거다. 우리가 귀여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 또한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을 증가하게 만든다. 다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효과적으로 맺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사실 많다. 하지만 독서 후 선뜻 실천이 힘든 이유는 나의 성향과 매칭이 되지 않는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책은 전문 코치처럼 훈련법을 말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자신의 처지에서 받아들일 공간을 벌려주고 생각거리를 주고 있다. 무리한 감정소모 없이 타인과 원만히 지낼 수 있고 심지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우선 단문이 많아 소화하기 편하다. 요즘은 단문이 대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내용을 토대로 다정한 태도가 어떻게 상황을 변화시키고 갈등을 해결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하고 30대의 책임 있는 어른의 문턱에 오르고 나니 특히 말의 무게를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 글을 쓴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은 남는다'라는 말이 있다. 사건은 흐지부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에 상대가 내게 남긴 말투와 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이다. 그 말인즉은 타인의 생각보다 나에 대해 갖은 인상을 오래 간직한다는 의미다. 나에게 다정하게 건넨 말투, 태도로 그 사람의 인품을 결정짓는다. 결국 인간관계란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 낸다. 내가 그들을 나의 인생에서 한 조각, 한 순간의 태도로 기억해 내듯이 내가 다정하게 대했던 모습 한 조각만 남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나도 편하고 상대도 다정한 모습으로 일상을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하지만 착한 결론에 다다른다.
태도와 스타일이다
작가는 뻔한 말을 자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하는 생각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전하지 않으면 모른다. 고맙다는 말, 변명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빠른 사과, 많이 배웠다는 존경을 담은 말,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감정 표현 등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말들이다. 반복하고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표현이면 된다. 물론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 인간관계다.
작년 내 생일에 가족이벤트차 성탄트리를 보러 서울시내에 간 적이 있었다. 잠시 작은 아들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으로 올라와 보안대를 지나치려 할 때 경비용역업체 직원을 만나게 되었다. 아들은 씩씩하게 인사하며 가족을 소개했는데, 나는 그들의 호감 어린 눈빛을 보고 기분이 참 좋아졌다. 그분들은 아들이 인사를 참 잘하고 멋진 청년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분들과 아들은 출퇴근 시간에 잠시 인사를 나눌 뿐이었을 텐데 멋진 청년이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대화법(히야시 겐타로 저)'에서도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칭찬이나 긍정화법을 훈련하기보다 '상대를 부정하지 않는' 말투와 행동 만으로도 커뮤니케이션 효과는 크다고 확언하고 있다. 거절하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다정한 사람은 세상을 따뜻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다정한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기심은 나를 위한 다정함이다. 내 진심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돕는 일,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정한 사람이 되려면, 그 안에 건강한 이기심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남을 위해 무조건 희생하기보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을 아는 사람이 결국 남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