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해군은 1천 척이 넘는 배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끄는 그리스 함대는 배가 모두 합해 200척밖에 되지 않았어. 처음부터 승부는 페르시아 해군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이 보였지. 그리스 군을 이끈 테미스토클레스는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전쟁 포로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결정했어. 디오니소스의 영예를 위해 페르시아 왕자 세 명을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령한 거야."
본문 中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대부분 영화 같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예상한다. 그만큼 그는 거침없이 완벽한 스토리 안에서 앵글을 돌리듯 독자들을 가지고 논다. 그래서 이번 2021년 신작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이란 책도 제목만큼이나 즐거운 기대를 갖게 한다.
소설의 모티브인 '센 강의 여인'은 실제 19세기말에 센 강에서 건져낸 죽은 여인을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석고로 데스마스크를 뜨고 이후 복제품이 파리 곳곳을 퍼져나갔다고 한다. 나도 그 여인의 데스마스크 석고를 찾아봤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게 이 죽은 여인의 사체(마스크)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번 소설의 서두는 '센 강'에서 건져낸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행히 여인은 죽지 않았지만 기억을 못 하고 있고 혼란 상태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었던 허술한 경찰청 보호로 여인은 병원으로 이송 도중 도망치고 소설은 흥미롭게 시작된다. 도망친 그 여인이 남긴 것이라곤 알몸으로 건져졌다는 것과 손목시계와 팔찌, 몸에 담쟁이덩굴 문신, 경찰병원에 남겨진 머리카락과 소변 정도다. 대형사건 또는 강력범죄에 속하진 않지만 처리해야 하는 특이한 사건만을 전담하는 곳으로(BANC특이 사건국) 이 사건은 넘겨진다.
수사국에서 하는 기본적인 절차(머리카락, 소변) 결과 그 여인은 일 년 전에 항공기 사고로 죽은 피아니스트 '밀레나'로 밝혀진다. 수사대에서 사고를 쳐서 경질되어 들어간 BANC에서 첫 사건을 맡은 '록산'경감은 본능적인 촉으로 이 사건은 대박임을 감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경질되어 부임한 BANC 전임자는 한때 잘 나가던 마르세유 경찰정 강력계 형사 '마르크 바티유'였고(2층 계단에서 떨어져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의 아들인 '라파엘 바타유'가 바로 센 강에서 건져내었지만 도망친 그 여인(피아니스트) 약혼자였기 때문이다.
기욤 뮈소의 독자라면 센 강에서 건져내 도망친 그 여인이 비행기사고로 즉사한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주인공 '록산경감'은 도망친 여인을 찾아 헤매지만 경질된 형사에게 협조하는 수사국은 없었고, 인맥을 동원해 가까스로 찾아낸 단서로 헤매는 모습은 지루한 설명만큼 답답함이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인내심 있게 기대했던 사건의 실마리가 경감의 뛰어난 실력으로 어느 순간부터 풀려나가길 기대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마지막 장이라니. 이번 소설은 예전의 명성만큼 빠른 전개가 결코 아니다!
그 여인을 센 강에서 건져낼 때가 12월 21일(크리스마스 시즌)이고 성탄절(12월 25일)에 사건이 종결되니 5일간을 디테일하게 그린 내용임에도 말이다. 게다가 미심쩍은 열린 결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다시 든 생각은 만약 이 소설의 각도를 디오니소스 신화에 맹신하는 신자들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끌고 갔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들이 왜 디오니소스 신화에 찬양하고 신격화하며 삶을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치부되는 가에 대한 생각을 알아가는 것도 부적응자들을 이해하는 소득이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강력계 형사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답답하게 실마리를 풀어 독자를 꽉 막힌 도로 안에 갇힌 것처럼 느끼게 했고, 각별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와 유령동생의 등장은 여느 드라마에서 흔히 사용하는 감정선을 끌어다 쓴 기분이 들게 했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디오니소스의 광신도들이 벌였던 미제사건을 초반부에 뿌려놓음으로써 현실도피를 광란의 미학으로 발휘되는 그들의 미친 짓을 철저히 독자들에게 몰입하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야 소설의 후반부에 몰아치는 사티로스, 드론의 등장에서 흥분감이 커졌을 것이다. 미친 것들에게 농락당하는 경찰국의 사람들의 모습으로 결말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괜찮은 소재와 스토리를 가지고 편집을 잘못해서 어정쩡한 소설이 완성이 된 기분이다. 기욤 뮈소가 집필에 변화가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