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책
"삶에서 완벽한 순간이란 오지 않는 거였어요.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암전 되듯 끝이 오겠죠. 그런데 저는 20대에 줄곧 그걸 잊고 살았던 거예요. 저는 한국에서 요구하는 시험에 꽤 부합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어요. 승부욕도 센 편이고, 기준이 정확한 객관식 시험에 거부감도 크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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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일지 모르니 정밀 검사를 권한다는 건강검진 결과 내용을 멍하니 따라가듯 읽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어쩌면 막내 삼촌이 보낸 편지일지 모른다고요. 천국에 있는 삼촌이 제게 편지를 썼다면 이렇게 말했겠죠. '소희야,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 봐. 남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거 말고,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라고요."
본문 中
2022년 상반기 기대작 1위라는 "책들의 부엌" 광고를 보고 무심결에 구입해 읽은 책이다. 이젠 책도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다. 휩쓸려 구입하는 편이 아닌데, 표지가 이뻐서였을까, 제목에 이끌려서일까 빨리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소설은 소양리에 젊은 친구들이 북스 키친(Books Kitchen)을 연 사연과 함께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로 꾸미고 있다. "책들의 부엌"의 의미는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처럼 따스한 북카페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우리가 집밥 하면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북스 키친은 일정한 기간, 또는 시간을 편안하게 손님들에게 제공한다.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잠자리도 독서공간도 이벤트도 즐겁게 꾸며놓은 곳이다. 정말 이런 곳이 있다면 내어 달리기만 하는 숨 막힌 승부사회에서 꽤 괜찮은 곳이 아닐까, 실제로 있지 않을까 독서를 하면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소설 속 소양리 북스키친은 소양리 한옥 4채를 허물고 지은 카페지만 한옥의 주요 풍경은 대부분 살린 채(주춧돌, 매화나무 등) 편안하게 설계하고 지었다. 정원을 중심으로 십자 모양으로 4개의 동을 펜션과 북 스테이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저자의 상세한 묘사는 충분히 그림을 보듯 아름답게 카페의 전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카페의 주인 유진은 스타트업을 창업 및 성공했지만 라이선스를 넘기고 이직을 결정한 선배에게 실망해 서울을 떠나 소양리에 북 카페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야무진 북 카페계획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페체인점과 성격이 다르다. 설계서부터 완공을 함께함과 동시에 북 카페운영에 철두철미하다. 읽으면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과 창업에 성공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단 사실이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을 때 북 카페문을 열고, 그 해 크리스마스가 오면서 이 소설은 끝난다.
그 일 년동안 9명의 손님들이 자신만의 고민과 사연을 안고 현실에서 피신하듯 북카페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읽으면서 나의 20대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에 짧은 한숨과 답답함이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밤을 새우고 세상을 다 얻은 기분으로 신나 하고 내일이 없는 아이처럼 통곡하고 자신의 앞에 눈부신 폭죽이 펑펑 터지는 듯한 놀라움에 소리 지르던 계절은 흘러갔다.
서른을 코앞에 둔 대학 절친들은 각자 어른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을 스스로 견디고 또 다른 성장통을 마주한 손님들을 가슴으로 안아준다. 여러 사연들이 있었지만 나는 성장가도를 달리던 최소희(최연소 판사가 될)의 사연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삶은 성공을 위해 달리는 기차가 아니다. 자신을 보살피고 자신에게 알맞은 길을 찾아갈 때 비로소 안정된 삶을 찾는 것이다.
북카페 주인과 절친들 그리고 아홉 명의 손님들 모두 삶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표시 내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들이다. 그들의 아픈 청춘을 마주하면서 나는 울먹이는 내 안의 내 안의 아이를 꺼내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그동안 힘들었지." 하면서.. 소설 속에 소희의 독백이 그래서 참 많이 와닿는다.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도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게 아닐까.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서 자신에게 최적한 길을 설정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