寄李十二白二十韻(기이십이백이십운) 이백에게 주는 20운 시(五言排律)
숙종 건원 2년(759) 가을에 진주(秦州)에서 지은 것이라는 설과 숙종 상원 2년(761)에 성도에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시로 지어낸 이백의 전기이다.
昔年有狂客(석년유광객) 예전에 사명광객이란 분이 있어
號爾謫仙人(호이적선인) 그대를 적선이라고 이름했으니,
筆落驚風雨(필락령풍우) 붓을 내려 쓰면 비바람도 놀라고
詩成泣鬼神(시성읍귀신) 시가 이뤄지면 귀신도 울고 말았네.
聲名從此大(성명종차대) 이로부터 명성이 성대하여져
汩沒一朝伸(골몰일조신) 묻혀있다 하루아침에 뜻을 펼치었거늘,
文彩承殊渥(문채승수악) 시에 문채 발하여 각별한 성은 입었으며
流傳必絕倫(유전필절륜) 세상에 전해진 시는 필시 짝할 바가 없었네.
龍舟移棹晚(용주이도만) 임금의 용주는 그대 위해 천천히 노를 저었고
獸錦奪袍新(수금탈포신) 줬던 비단 도포 빼앗아 새로 그대에게 줬으며,
白日來深殿(백일래심전) 대낮에 깊은 궁전에 들어가 글을 지으니
青雲滿後塵(청운만후진) 청운과 같은 많은 문인학사들 추종하였네.
乞歸優詔許(걸귀우조허) 사퇴하길 청하자 특별히 윤허해 주셨고
遇我夙心親(우아숙심친) 나와 만나서는 평소 원한 듯 친해졌으며,
未負幽棲志(미부유서지) 은거하려던 뜻을 저버리지 아니하였고
兼全寵辱身(겸전총욕신) 총애 받던 욕을 보던 몸을 잘 보전하였네.
劇談憐野逸(극담련야일) 거리낌없이 말하며 분방함을 좋아하였고
嗜酒見天真(기주현천진) 술을 즐기면서 천진한 모습 드러내었으며,
醉舞梁園夜(취무양원야) 밤중에 양원에서 취하여 춤을 추었고
行歌泗水春(행가사수춘) 봄날 사수가를 걸으며 노래를 하였다네.
才高心不展(재고심부전) 재주 높았음에도 뜻을 펴지 못하였으며
道屈善無鄰(도굴선무린) 세도 그릇되어 선한 그대에게 이웃 없었으니,
處士禰衡俊(처사예형준) 처사 중에서는 예형과 같은 준재였으며
諸生原憲貧(제생원헌빈) 제생 중에서는 원헌처럼 가난하였다네.
稻粱求未足(도량구미족) 먹을 곡식을 구하여도 부족하기만 하였고
薏苡謗何頻(억이방하빈) 율무를 진주라 우기며 얼마나 자주 비방했던가?
五嶺炎蒸地(오령염증지) 오령 남쪽 무덥고 습한 땅으로 유배 당했으니
三危放逐臣(삼위방축신) 삼위로 추방된 삼묘와도 같은 신세였다오.
幾年遭鵩鳥(기년조복조) 어느 해에 가의처럼 불길하게 올빼미를 만났던가?
獨泣向麒麟(독읍향기린) 기린 향하여 공자처럼 홀로 눈물 짓게 되었다만,
蘇武元還漢(소무원환한) 소무의 마음은 원래부터 한나라 향해 돌아왔고
黃公豈事秦(황공기사진) 상산에 은거한 황공이 어찌 진나라를 섬기겠는가!
楚筵辭醴日(초연사예일) 초왕의 연회에서 단술 사양한 목생처럼 벼슬 안 받았고
梁獄上書辰(양옥상서신) 양나라 감옥에서 상서한 추양처럼 그대는 해명했건만,
已用當時法(이용당시법) 조정에서는 당시의 법에 따라 정죄하고 말았으나
誰將此議陳(수장차의진) 이백을 용서하라고 그 누가 건의를 하였던가?
老吟秋月下(노음추월하) 늙은 몸으로 가을 달 아래 읊조리고는
病起暮江濱(병기모강빈) 저녁 강가에서 병든 몸을 일으켜 세울 터이나,
莫怪恩波隔(막괴은파격) 은혜의 물결 막혔다고 괴이히 여기지 마오.
乘槎與問津(승사여문진) 그대 위해 뗏목 타고 나아가 요로에 하소연하리니!
* 광객(狂客) : 하지장(賀知章)을 가리킴. 사명광객(四明狂客)으로 자호하였다.
* 적선(謫仙) : 유배된 신선. 하지장이 처음 이백의 시를 읽고는 이렇게 찬탄하였다고 함.
* 시성읍귀신(詩成泣鬼神) : 하지장이 이백의 〈오서곡(烏棲曲)〉을 읽고, 귀신도 울게 할 것이라 했다고 전한다.
* 승수악(承殊渥) :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는 뜻. 당현종이 이백을 불러 공봉한림(供奉翰林)에 임명한 것을 가리킴.
* 용주(龍舟) : 현종이 백련지(白蓮池)에서 배를 띄우고 주연을 베풀며 놀 때 이백을 불러 서문을 짓게 했는데, 당시 이백이 취해 있어 고력사(高力士)가 부축해 배에 오른 고사가 있음.
* 수금(獸錦) : 짐승의 형상을 도안에 넣은 화려한 비단을 가리킴. 이 구절은 송지문의 고사를 가져다 이백의 시가 최고임을 말한 것임. 《당시기사(唐詩紀事)》 :무후(武后)가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 먼저 지은 이게 금포(錦袍)를 준다고 했는데, 좌사 동방규(東方虯)가 먼저 시를 완성하였다. 뒤따라 송지문(宋之問)이 완성한 글을 보니 더욱 뛰어나 다시 금포를 뺏어 그에게 주었다.
* 백일(白日) : 여기서는 대낮의 의미로 쓰였음.
* 청운(青雲) : 지위가 높거나 명망이 있는 이를 비유한 것임.
* 걸귀(乞歸) : 이백은 고력사에 참소를 입고 스스로 조정에 용납되기 어려움을 알고 귀환을 요청하였다. 이에 현종은 금을 하사하고 보내주었음.
* 양원(梁園) : 원림의 이름. 지금 하남성 상구현(商丘縣)에 터가 있다. 서한 양효왕(梁孝王) 유무(劉武)가 조성하였다. 여기서는 하남성 개봉과 상구 일대를 가리킴. 현종 천보 3년(744)에 두보는 이백, 고적과 함께 이 지역을 유람하였음.
* 사수(泗水) : 산동성 사수현(泗水縣)에서 발원한 강물. 곡부, 윤주 등을 흘러감. 두보와 이백이 유람한 제(齊) 량(粱) 지역.
* 예형(禰衡) : 동한 때 사람. 어려서 재능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아 공융(孔融)이 높이 평가하였다.
* 원헌(原憲) : 춘추시대 송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집이 매우 빈궁하였다.
* 억이(薏苡) : 한나라 때 장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정벌하고 율무를 싣고 왔는데 사람들이 진주와 귀한 조개로 알고 비방하였다. 이 구절은 이백이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모반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비유한 것임.
* 오령(五嶺) : 대유령(大庾嶺)을 비롯한 고개 이름. 이백이 떠돌아다닌 곳으로 광동, 광서 및 강서, 호남의 네 개 성(省)의 경계 지역.
* 삼위(三危) : 산이름. 감숙성 돈황현(敦煌縣) 남쪽. 순임금이 삼묘(三苗)를 쫓아낸 곳이다.
* 복조(鵩鳥) : 올빼미. 옛날에 상서롭지 못한 짐승으로 여겨졌음. 서한의 가의(賈誼)가 장사왕 태부로 좌천되었을 때 올빼미가 집에 날아들어와 〈복조부(鵩鳥賦)〉를 지었음.
* 기린(麒麟) : 전설 속 상서로운 동물. 《공양전· 애공십사년》에 의하면, 공자가 기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때가 아닌 데 출현함에 상심해 곡하며 울었다. 이 구절은 이백이 곤경에 빠져 가슴 아파함을 비유한 것.
* 소무(蘇武) : 서한 사람으로 흉노에 사자로 갔다 억류되어 19년을 보냈으나 지조를 지켜 조정을 배신하지 않고 결국 송환되었음.
* 황공(黃公) : 하황공(夏黃公). 진(秦) 말기에 은거한 상산사호(商山四皓) 가운데 한 명. 이 구절은 이백이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막부에 들어간 것은 반역에 가담할 목적이 아니라 그의 의도를 몰라서 그런 것임을 변명한 것임.
* 초연사례(楚筵辭醴) : 한나라 때 목생(穆生)이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의 중대부(中大夫)로 있었다. 목생은 술을 좋아하지 않아 원왕은 주연을 할 때 늘 그를 위해 따로 단술을 준비했다. 원왕이 죽고 아들 유무(劉戊)가 왕위를 물려받은 뒤 처음에는 단술을 준비했으나 후에는 잊어버렸다. 이에 목생은 “단술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왕의 뜻이 태만해서다”라 하고는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이 구절은 그 고사를 거꾸로 사용해 영왕 이린이 내려준 관직을 이백이 받지 않았음을 말한 것임.
* 양옥상서(梁獄上書) : 한나라 때 추양(鄒陽)이 양효왕(梁孝王)을 섬기다 참소를 입고 하옥되었다. 추양은 옥중에서 상소해 힘껏 자신을 변명했으며 후에 석방되어 상객(上客)이 되었다. 이 구절은 이백이 영왕 이린에 연좌되어 심양(潯陽)에 갇혔을 때 자신의 억울함을 변명한 일을 비유한 것임.
* 승사여문진(乘槎與問津) : 이백의 신원을 위해 조정의 당권자를 찾아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임. 옛날에 뗏목을 타고 은하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었으며, 뗏목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조정에 들어가거나 관원이 되어 사자로 파견됨을 비유하기도 함. ‘與’는 ‘爲’의 뜻. 문진(問津)은 요직에 있는 당권자를 찾아감을 비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