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房太尉墓(별방태위묘) 방태위의 묘를 떠나며(五言律詩)
대종 광덕 2년(764) 봄, 낭주(閬州)에 있을 때 지음. 방태위(房太尉)는 태위에 추증된 방관(房琯)을 가리킨다. 두보는 벼슬하기 전부터 방관과 교제가 있었으며, 숙종의 조정에서 좌습유로 있을 때 그 사람됨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그가 실책으로 재상에서 파직되었을 때 두보는 상소를 올려 적극 구원하려다 숙종의 진노를 샀다. 결국 방관이 좌천되었을 때, 두보 또한 화주사공참군으로 쫓겨났다. 광덕 원년(763) 8월 방관이 형부상서에 배수되어 장안으로 가던 도중 낭주에서 병사했을 때, 두보는 9월에 재주(梓州)에서 낭주로 와 그를 조문하였다. 이듬해 3월, 엄무(嚴武)가 다시 동서천절도사(東西川節度使)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보는 성도로 돌아가기 전에 낭주성 밖 방관의 묘를 찾아 그를 애도하며 이 시를 남겼다.
他鄕復行役(타향부행역) 타향에서 또다시 길 가게 되어
駐馬別孤墳(주마별고분) 말 멈췄다 쓸쓸한 무덤가를 떠나네.
近淚無乾土(근루무건토) 흘린 눈물 가까이 마른 땅 없고
低空有斷雲(저공유단운) 나지막한 하늘에는 조각구름만.
對棋陪謝傅(대기배사부) 바둑 두며 사안 같은 그대 짝하였거늘
把劍覓徐君(파검멱서군) 검을 쥔 채 서군 같은 그대 찾아본다오.
唯見林花落(유견임화락) 오로지 숲에 지는 꽃들 눈에 보이고
鶯啼送客聞(앵제송객문) 객을 보내는 꾀꼬리 울음소리 들리네.
* 사부(謝傅) : 동진의 명재상 사안(謝安)을 가리킴. 사후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대군을 거느리고 침공했을 있을 때 사안이 정토대도독으로 임명되어 태연히 손님과 바둑을 두며 비수(淝水)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 서군(徐君) : 춘추시대 서나라의 군주. 오나라의 계찰(季札)이 서나라를 지날 때 그 임금이 자신의 검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에 돌아가는 길에 서나라 임금에게 주려했으나 이미 죽어 검을 풀어 무덤가 나무에 걸어 놓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