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偶題(우제) 우연히 지어본다(五言排律)

by 오대산인

偶題(우제) 우연히 지어본다(五言排律)


대종 대력 원년(765) 가을, 기주에 머물러 살 때 지었다. 22운으로 이루어진 배율의 걸작. 문장을 논하며 시작하였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쳤다.



文章千古事(문장천고사) 문장은 불후의 성사라 천고에 전해지지만

得失寸心知(득실촌심지) 잘 되고 못 되고는 지은이의 마음이 아네.

作者皆殊列(작자개수열) 작자들은 모두 창작의 성취로 남다른 지위를 얻으나

名聲豈浪垂(명성기량수) 그들의 명성이 쉽게 후대에 전해지는 것은 아니네.

騷人嗟不見(소인차불견) 아! 초사의 작자들이야 만나볼 길이 없으며

漢道盛於斯(한도성어사) 한나라의 시도는 오언시가 성하여 발전하였네.

前輩飛騰入(전배비등입) 한말과 위초 선배들은 날아오를 듯 시단에 자리했지만

餘波綺麗爲(여파기려위) 육조시대는 말류가 되어 기려함만을 추구하였네.

後賢兼舊制(후현겸구제) 후세의 걸출한 작가는 옛 시문의 체제를 겸비했으나

歷代各淸規(역대각청규) 각 시대마다 각기 독특한 창작의 풍모를 갖추었네.

法自儒家有(법자유가유) 작시의 법도는 일찍이 유가의 글 중에 나와 있으며

心從弱歲疲(심종약세피) 나는 어려서부터 시에 마음의 힘을 다 쏟아 부었네.

永懷江左逸(영회강좌일) 나는 늘상 강좌 시인의 표일함을 마음에 두어왔으나

多謝鄴中奇(다사업중기) 업땅 건안칠자의 기특한 재주에는 많이 모자란다네.

騄驥皆良馬(녹기개양마) 그들 업하의 시인들은 모두 녹기와 같은 준마였고

麒麟帶好兒(기린대호아) 기린이 아름다운 새끼를 동반한 경우도 있었네.

車輪徒已斲(거륜도이착) 아비는 마음먹은 대로 수레바퀴를 잘 깎아냈지만

堂構惜仍虧(당구석잉휴) 자식은 집을 지음에 어그러지기도 하니 안타깝구나.

漫作潛夫論(만작잠부론) 나는 왕부의 잠부론처럼 비판의 글 되는대로 지어냈고

虛傳幼婦碑(허전유부비) 한단순의 ‘유부’비 같은 글 지어 헛되이 전해졌다네.

緣情慰漂蕩(연정위표탕) 나는 서정을 하여 시 지으며 떠도는 삶을 위로하고

抱疾屢遷移(포질누천이) 병에 걸린 채 누차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처지라네.

經濟慚長策(경제참장책) 경세제민이야 훌륭한 계책이 없어 부끄럽기만 한데

飛棲假一枝(비서가일지) 뱁새가 한 나뭇가지에 깃들 듯 기주에 와서 있다네.

塵沙傍蜂蠆(진사방봉채) 먼지바람 속에 벌과 전갈은 설쳐대고 있으며

江峽繞蛟螭(강협요교리) 강과 골짝을 사나운 이무기가 에워싸고 있구나.

蕭瑟唐虞遠(소슬당우원) 스산한 기주의 풍경처럼 요순 시대는 아득히 멀고

聯翩楚漢危(연편초한위) 초와 한이 다투듯 위태로운 전란이 그치지 아니하네.

聖朝兼盜賊(성조겸도적) 나라 안에는 도적놈들 설쳐대어 근심인데다

異俗更喧卑(이속갱훤비) 기주의 풍습 별달라 시끄럽고 비루해 불편하구나.

鬱鬱星辰劍(울울성신검) 별무늬 빛나는 보검이 땅에 묻힌 양 마음 울적하고

蒼蒼雲雨池(창창운우지) 검푸른 못의 승천하지 못하는 용처럼 신세 암담하네.

兩都開幕府(양도개막부) 장안 낙양에까지 장군의 지휘부를 열게 되었고

萬宇揷軍麾(만우삽군휘) 온 세상에 군대의 깃발 꽂혀 있어 불안하기만 하네.

南海殘銅柱(남해잔동주) 남해에 세워진 구리 기둥은 꺾어져 버렸으며

東風避月支(동풍피월지) 임금은 토번의 침략을 피해 달아나기도 하였다네.

音書恨烏鵲(음서한오작) 동생들 편지 없으니 희소식 알린다는 까치 원망스럽고

號怒怪熊羆(호노괴웅비) 곰과 갈색곰은 어찌나 울부짖는지 괴이하기도 하다.

稼穡分詩興(가색분시흥) 시 짓는 흥치를 나눠 농사일을 노래하기도 하며

柴荊學土宜(시형학토의) 집안에서 토질에 맞는 작물을 익히기도 한다네.

故山迷白閣(고산미백각) 고향 종남산의 백각 봉우리는 멀어 뵈지 않는데

秋水憶皇陂(추수억황피) 장안 남쪽 흐르는 황피의 가을 물을 추억할 뿐이네.

不敢要佳句(불감요가구) 나 아름다운 시구 지어내길 바란 것은 아니며

愁來賦別離(수래부별리) 시름 찾아들어 이별의 슬픔을 풀어보려 지어봤다네.


* 수열(殊列) : 저마다 다른 독자적인 성취와 입지를 의미함.

* 낭수(浪垂) : 물결이 흐르듯 쉽게 후대에 명성이 드리워져 전해짐.

* 소인(騷人) : 〈이소(離騷)〉의 작자 굴원으로 대표되는 초사(楚辭) 작가를 가리킴.

* 한도(漢道) : 한나라 때의 시도(詩道). * 성어사(盛於斯) : ‘이것에 성하였다’는 뜻으로, 오언시가 성한 것을 가리킴.

* 전배(前輩) : 한나라 말기와 위나라 초기인 건안(建安), 황초(黃初) 연간의 시인들을 가리킴.

* 여파(餘波) : 말류(末流)과 같음. 육조의 시인들을 가리킴. * 기려위(綺麗爲) : 육조 가운데 제(齊)와 량(粱)의 시인들이 특히 형식이 화려하고 내용이 부화한 경향을 띠었음.

* 후현(後賢) : 후세의 걸출한 작가를 가리킴. * 겸구제(兼舊制) : 에전 시대의 시가의 체제를 겸유하다.

* 청규(淸規) : 참신한 독자적 창작법이나 예술적 풍모를 가리킴. * 유가유(儒家有) : 《논어》에 나오는 흥관군원(興觀群怨) 등 시와 관련된 의논이나 〈모시서〉에 나오는 풍아송부비흥(風雅頌賦比興)의 육의(六義) 따위를 가리킴.

* 법(法) : 작시의 법도를 가리킴.

* 약세(弱歲) : 약관(弱冠)의 나이. 청소년기를 가리킴.

* 강좌일(江左逸) : 진(晉) 이후의 표일(飄逸)한 시풍을 의미함. 강좌는 장강 하류의 강남 일대를 가리키며, 지금 강소성의 강남 지역에 해당함. 여기서는 특히 육조시대 그 지역에 자리했던 동진과 남조를 가리킴.

* 업중기(鄴中奇) : 조조 밑에서 활약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기이하고 헌걸찬 풍격을 가리킴. 업은 삼국시대 지명으로, 지금 하북성 임장현(臨漳縣) 서쪽 지역. 조조가 처음 위공(魏公)에 봉해졌을 때 치소가 업땅에 있었음.

* 녹기(騄驥) : 천리마의 이름. 업중의 여러 시인을 비유한 것임.

* 기린대호아(麒麟帶好兒) : 기린은 전설 속의 진기한 짐승. 이 구절은 조조(曹操)와 그 아들 조비(曹丕), 조식(曺植)의 경우처럼 부자가 서로 시를 잘한 경우가 있음을 비유한 것임.

* 거륜도이착(車輪徒已斲) : 아버지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수레바퀴를 깎아낸다는 의미임. 《莊子》에서 윤편(輪扁)이 제환공(齊桓公)에게 말하길, 자신은 수레바퀴를 깎을 때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마음먹은 대로 손을 움직여 가동하는데 이런 기능은 자식에게 전해주기 어렵다고 하였다.

* 당구석잉휴(堂構惜仍虧) : 자식이 아버지가 짓던 집을 제대로 완성해내지 못함을 의미함. 《尙書·大誥》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뒤이어 집을 짓는 것으로써 자식이 아버지를 계승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비유하였다.

* 잠부론(潛夫論) : 동한의 사상가 왕부(王符)의 논문집으로 시국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두보 역시 시로써 당시 정치 문제를 풍자했기에 그에 견준 것이다.

* 유부비(幼婦碑) : 한말의 한단순(邯鄲淳)이 쓴 효녀 조아(曹娥)의 비문(碑文)을 가리킴. 채옹(蔡邕)은 그 비문을 은어(隱語)로 칭찬해 ‘絶妙好辭(절묘호사)’라 했는데, ‘유부(幼婦)’는 그 가운데 ‘妙’자에 해당한다. ‘幼婦’는 곧 ‘少女’이며, 그 두 글자를 하나로 합치면 ‘妙’자가 된다.

* 연정(緣情) : 감정을 토로하여 시를 짓는다는 뜻. 서정(抒情)과 같음.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시는 감정을 펴내고 아름답게 수식한다.”(詩緣情而綺靡)는 구절이 있음. * 위표탕(慰漂蕩) : 시를 지어 떠돌아다니는 삶의 고통을 자위한다는 뜻.

* 가일지(假一枝) : 《장자·소요유》 :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봤자, 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 봉채(蜂蠆) : 벌과 전갈. 악인을 비유함.

* 교리(蛟螭) : 이무기. 지방에 할거한 군벌을 비유함.

* 당우(唐虞) :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의 두 임금. 요순의 태평시대를 가리킴

* 초한(楚漢) :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를 가리킴.

* 성조(聖朝) : 자기 왕조에 대한 미칭. 당나라를 가리킴.

* 성신검(星辰劍) : 별이 줄지어 운행하듯 무늬가 찬란한 검. 이 구절은 보검이 땅에 묻혀 빛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뜻을 펴지 못함을 비유한 것임.

* 운우지(雲雨池) : 삼국 오나라의 주유(周瑜)가 말하길, 교룡이 구름과 비를 만나 승천하게 되면 “더 이상 못 속에 있던 그것이 아니다.”(終非池中物也)고 하였다.

* 양도(兩都) : 장안과 낙양을 가리킴. * 막부(幕府) : 장수의 지휘부를 가리킴.

* 만우(萬宇) : 온 세상. 만방(萬方)과 같음.

* 남해(南海) : 지금 광동성 및 광서성 지역. 널리 남방의 변경을 일컬은 것임. * 동주(銅柱) : 동주표(銅柱標)를 가리킴. 후한 때 마원(馬援)이 월남 북부의 교지(交趾)를 정벌하고 한나라 남쪽 경계로 세운 표지. 이 구절은 당시 오령(五嶺) 이남에 전란이 발생하고, 당나라가 남조(南詔)를 쳤으나 이기지 못해 불안한 상황임을 지적한 것임.

* 동풍(東風) :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봄바람. 당나라 혹은 황제를 비유한 것임. * 월지(月支) : 옛날 서역에 있던 소수민족과 그 나라. 지금 감숙성 서부 및 청해성 일대. 여기서는 토번을 가리킴. 이 구절은 토번이 연이어 농우(隴右)와 관중(關中) 지역을 침입하고 또 한 차례 장안을 점령해 대종이 피란한 것을 의미함.

* 가색(稼穡) : 심고 거둠. 농사를 의미함. 두보는 기주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음.

* 시형(柴荊) : 거처하는 집을 가리킴. 혹은 나무를 꺾꽂이한 것으로 보기도 함. * 토의(土宜) : 토질에 맞는 농사 방법을 가리킴.

* 백각(白閣) : 백봉각(白峰閣). 종남산의 봉우리 이름.

* 황피(皇陂) : 미피(渼陂)를 가리킴. 장안성 남쪽에 있는 못 이름. 종남산 계곡의 물이 모여 이루어진 작은 호수.

* 부별리(賦別離) : 이별의 우수를 푸느라 시를 짓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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