暮春, 題瀼西新賃草屋. 五首(모춘제양서신임초옥, 5수) 늦은 봄날에 양서의 새로 세든 초가에 제하다(五言律詩)
대종 대력 2년(767) 3월, 기주(夔州)의 적갑(赤甲)에 살다 양서의 초가를 세내어 이사한 뒤 집의 벽에 쓴 시이다. 양서는 지금 사천성 봉절현(奉節縣)을 흐르는 양수(瀼水)의 서쪽 지역으로, 두보는 농사로 생계를 도모하려 그리 옮겨 거주하였다.
3
綵雲陰復白(채운음부백) 아롱진 구름 흐렸다가 또 밝아지고
錦樹曉來靑(금수효래청) 화려한 꽃나무 새벽이 와 푸르러라.
身世雙蓬鬢(신세쌍봉빈) 신세 처량한 채 양 살쩍은 희어지고
乾坤一草亭(건곤일초정) 천지에 가진 것 없어 하나의 초가일세.
哀歌時自惜(애가시자석) 슬피 노래하며 종종 스스로 애석해하고
醉舞爲誰醒(취무위수성) 술에 취해 춤추나 누굴 위해 깨어나리?
細雨荷鋤立(세우하서립) 가랑비 속에 괭이 들고 서있노라니
江猿吟翠屛(강원음취병) 강가의 원숭이 청산 속에 울고 있다오.
* 채운(綵雲) : 화려하고 아름다운 구름. 봄날의 구름을 가리켜 말한 것임. * 음부백(陰復白) : 가랑비가 내린 것을 의미함.
* 금수(錦樹) : 무성히 꽃을 피운 나무. 봄날의 나무를 가리킨 것임. * 효래청(曉來靑) : 밤 비를 맞아 더욱 푸르러진 것을 의미함.
* 취병(翠屛) : 비취색의 병풍. 청산을 비유한 것임.
4
壯年學書劍(장년학서검) 젊은 시절 문무를 익히었지만
他日委泥沙(타일위니사) 훗날 진흙탕 모래밭에 버려졌다네.
事主非無祿(사주비무록) 임금 섬기며 녹을 받긴 했다만
浮生卽有涯(부생즉유애) 덧없는 삶이야 끝이 있지 않으리.
高齋依藥餌(고재의약이) 약에 의지해 초당에서 보내노라니
絶域改春華(절역개춘화) 만리타향에 봄꽃은 스러져간다.
喪亂丹心破(상란단심파) 난리 속에 충성심마저 깨어졌는지
王臣未一家(왕신미일가) 왕의 신하들 한 집안처럼 지내지 않네.
* 비무록(非無祿) : 전에 관직에 임명되어 녹봉을 받은 적이 있음을 말한 것임.
* 고재(高齋) : 새로 임대한 초가를 가리킴.
* 절역(絶域) : 당시 체류 중인 양서(瀼西) 지역을 가리킴.
* 상란(喪亂) : 죽음과 난리.
5
欲陳濟世策(욕진제세책) 세상 구제할 계책 펴보려고 했건만
已老尙書郎(이노상서랑) 이미 늙어져 상서랑 되고 말았네.
不息豺狼鬪(불식시랑투) 역적들의 싸움질 그치게 못하니
空慚鴛鷺行(공참원로항) 조정의 반열 섰던 것 부끄럽구나.
時危人事急(시위인사급) 시절 위태하고 사정이 급박했건만
風逆羽毛傷(풍역우모상) 역풍 만나 깃털만 손상되고 말았네.
落日悲江漢(낙일비강한) 해 저무는 강한 땅에서 슬퍼하다가
中宵淚滿牀(중소누만상) 한밤 중 침상에 눈물 흥건해지네.
* 상서랑(尙書郎) : 대종 광덕 2년(764)에 두보는 엄무의 추천으로 검교상서공부원외랑(檢校尙書工部員外郞)에 임명되었음.
* 시랑(豺狼) : 당나라를 침입하는 이민족과 번진의 할거 세력을 가리킴.
* 원로항(鴛鷺行) : 원앙과 백로가 차례대로 줄지어 난다는 뜻으로, 조정에서 백관이 입조할 때 행렬이 정연한 것을 비유함.
* 풍역(風逆) : 자신이 열악한 상황을 만나왔음을 비유한 것임.
* 강한(江漢) : 기주를 가리킴. 기주 땅은 장강(長江)과 서한수(西漢水)에 임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