遣遇(견우) 위험을 겪은 후 마음을 달래다(五言古詩)
대종 대력 4년(769) 봄, 악주에서 담주로 가는 도중에 지었다. 폭풍의 위기를 겪은 뒤 우연히 극도로 곤궁한 삶을 이어가는 여인을 목도하였다. 이에 백성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지방관의 행태를 비난하고, 자신은 민초의 비참한 상황에 비하면 그래도 생존을 도모할 수 있어 외려 기쁘다고 하였다. 반어적인 표현 속에 풍자가 신랄하다.
磬折辭主人(경절사주인) 허리 굽혀 절하고 주인과 헤어지고는
開帆駕洪濤(개범가홍도) 돛 펼쳐 큰 물결 위를 타고 가노라.
春水滿南國(춘수만남국) 봄 강물은 남국에 그득하니 흐르고
朱崖雲日高(주애운일고) 붉은 강벼랑 위 해는 높이도 떴다.
舟子廢寢食(주자폐침식) 뱃사람은 잠 못자고 밥도 먹지 못한 채
飄風爭所操(표풍쟁소조) 배를 몰면서 거센 폭풍과 다투었다오.
我行匪利涉(아행비리섭) 나의 여행길 순탄한 뱃길 아니니
謝爾從者勞(사이종자로) 너희 일꾼의 노고에 감사하노라.
石間采蕨女(석간채궐녀) 어느 아낙네 돌 사이에서 고사리 캐어
鬻市輸官曹(육시수관조) 저자에 내다 팔고 관에다 세금을 내네.
丈夫死百役(장부사백역) 지아비는 갖은 노역에 시달려 죽어
暮返空村號(모반공촌호) 저녁에 텅 빈 동네에 와 울기만 하네.
聞見事略同(견문사략동) 보고 들은 것과 사정이 대략 같으니
刻剝及錐刀(각박급추도) 가혹한 착취가 송곳까지 미치는구나.
貴人豈不仁(귀인기불인) 고관나리야 어찌 어질지 아니하더냐!
視汝如莠蒿(시여여수호) 너희 보기를 잡초 나부랭이처럼 하네!
索錢多門戶(색전다문호) 돈을 뜯어가는 명목은 많기도 하여
喪亂紛嗷嗷(상란분오오) 죽음과 재난 속에서 분분히 울부짖누나.
奈何黠吏徒(내하힐리도) 어찌하여 간교한 아전의 무리는
漁奪成逋逃(어탈성포도) 물고기 잡듯 수탈해 도망가게 만드나!
自喜遂生理(자희수생리) 나는 기쁘게도 살아갈 수는 있기에
花時甘縕袍(화시감온포) 꽃피는 시절 핫옷 입고도 달가워하네.
* 경절(磬折) : 가운데가 꺾어진 모양의 경처럼 몸을 굽혀 인사한다는 뜻. * 주인(主人) : 두보가 악양에서 신세를 진 악양수(岳陽守) 배민(裵隱)을 가리킴.
* 남국(南國) : 호남 일대를 가리킴.
* 주애(朱崖) : 장사(長沙) 일대 상강(湘江) 기슭의 붉은 벼랑. 지질이 홍색을 띰.
* 소조(所操) : 조종해야 하는 것, 즉 배를 가리킴.
* 비이섭(匪利涉) : 배를 타고 가는 것이 순조롭지 않다는 뜻. 匪는 非와 통함. 利涉은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뜻. 《易經·需卦》에 “큰 하천을 건너면 이롭다.”(利涉大川)는 구절이 있음.
* 종자(從者) : 뱃사람을 가리킴.
* 각박(刻剝) : 벗겨냄. 수탈을 의미함. * 추도(錐刀) : 작고 미세한 것을 비유함.
* 귀인(貴人) : 고관대작. 이 구절은 반어적인 표현임.
* 수호(莠蒿) : 강아지풀과 쑥. 하찮은 물건을 비유함.
* 색전(索錢) : 돈을 요구하다. 재물을 갈취한다는 뜻. * 다문호(多門戶) : 조세를 거둬들이는 명목이 많다는 뜻.
* 어탈(漁奪) :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는 것이 어부가 그물질해 물고기를 포획하는 것에 비유한 것임.
* 화시(花時) : 따뜻해진 봄날을 가리킴. * 온포(縕袍) : 핫옷. 방한용으로 묵은 솜이나 베를 넣어 만든 겉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