追酬故高蜀州人日見寄(추수고고촉주인일견기) 고 촉주자사 고적이 인일에 보내준 시에 뒤미처 수답하다(七言古詩)
대종 대력 5년(770) 정월 두보가 소상(瀟湘) 유역의 담주(潭州 : 호북 長沙)의 배 안에 머물 때 지은 시이다. * 인일(人日)은 음력 1월 7일로, 동북아 전통 절일(節日) 가운데 하나. 여와(女媧)가 세상을 창조할 때 제 7일에 인류를 창조했다고 전해짐.
[序]
開文書帙中, 檢所遺忘, 因得故高常侍適 - 往居在成都時, 高任蜀州刺史 - 人日相憶見寄詩. 淚灑行間, 讀終篇末! 自枉詩, 已十餘年; 莫記存沒, 又六七年矣. 老病懷舊, 生意可知. 今海內忘形故人, 獨漢中王瑀與昭州敬使君超先在, 愛而不見, 情見乎辭. 大曆五年正月二十一日, 卻追酬高公此作, 因寄王及敬弟.
* 고상시적(高常侍適) : 대종 광덕 원년(763), 고적이 조정에 귀환해 형부시랑(刑部侍郎),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임명되어 이렇게 일컬은 것임. * 한중왕우(漢中王瑀) : 한중왕에 봉해진 이우(李瑀)를 가리킴. 현종의 형제 이헌(李憲)의 여섯째 아들. * 소주경사군초선(昭州敬使君超先) : 소주자사(昭州刺史)를 역임한 경초선(敬超先)을 가리킴. 소주(昭州) 출신이며 여타 행적은 미상.
문서를 보관한 책갑을 열고 잊있던 것을 점검하다가 고(故) 상시(常侍) 고적(高適)이 - 내가 예전에 성도에 거처할 때, 고적이 촉주자사(蜀州刺史)에 부임했었다 – 인일(人日)에 그리워하며 보내준 시를 발견하였다. 나는 행간마다 눈물을 뿌리면서 끝까지 시편을 읽어 보았다. 시를 보내준 지도 이미 10여 년이 되었으며, 생사를 알지 못한 채 또 육칠 년을 보내고 말았다. 늙고 병들어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으니, 내 삶의 정회를 가히 알만 하리라. 지금 국내에 망형지교(忘形之交)를 나누는 친구는 오로지 한중왕(漢中王) 이우(李瑀)와 소주(昭州刺史)의 경초선(敬超先)이 있을 뿐인데,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니 글 속에 그리운 정이 드러나리라. 대력 5년 정월 21일, 고적의 시에 뒤미처 수답하고서 한중왕과 경선 아우에게 부쳐 보낸다.
自蒙蜀州人日作(자몽촉주인일작) 촉주자사의 ‘인일’ 시를 받은 이래로
不意淸詩久零落(불의청시구영락) 그 청아한 시를 오래 방치하게 될 줄 몰랐네.
今晨散帙眼忽開(금신산질안홀개) 오늘 아침 책갑 열어보다 홀연 눈에 들어와
迸淚幽吟事如昨(병루유음사여작) 눈물 흘리며 그윽이 읊노라니 어제 일 같구나.
嗚呼壯士多慷慨(오호장사다강개) 아! 장사다운 그 이는 기개가 넘쳤으며
合沓高名動寥廓(합답고명동료곽) 겹겹 쌓인 높은 명성 하늘을 진동하였네.
歎我悽悽求友篇(탄아처처구애편) 처량히 벗을 구하던 나의 시편에 탄식을 하고
感君鬱鬱匡時略(감군울울왕시략) 시국을 광정한 그대의 넉넉한 지략에 감격하네.
錦里春光空爛漫(금리춘광공란만) 금리의 봄빛은 부질없이 흐드러지건만
瑤墀侍臣已冥寞(요지시신이명막) 궁정에서 임금 뫼시던 신하 벌써 세상을 떴네.
瀟湘水國傍黿鼉(소상수국방원타) 소상강 물나라에서 나는 자라 악어 곁에 있으며
鄠杜秋天失鵰鶚(호두추천실조악) 가을날 장안의 수리 물수리 같던 그대 사라졌네.
東西南北更誰論(동서남북갱수론) 동서남북 떠도는 이를 또 누가 언급이나 해주리?
白首扁舟病獨存(백수편주병독존) 작은 배에 백발 되어 병든 채 홀로 남았네.
遙拱北辰纏寇盜(요공북신전구도) 멀리 임금 계신 곳 보니 도적에 둘러싸였는데
欲傾東海洗乾坤(욕경동해세건곤) 동해 바닷물 뒤엎어 천하를 씻어내고 싶구나.
邊塞西羌最充斥(변새서강최충척) 변새에는 토번이 가장 많이 들어차 있어
衣冠南渡爲崩奔(의관남도위붕분) 사대부들 남으로 강 건너 피하랴 어수선하다.
鼓瑟至今悲帝子(고슬지금비제자) 요임금의 따님 거문고 타며 지금도 슬퍼하는데
曳裾何處覓王門(예거하처멱왕문) 옷자락 끌며 어디로 왕의 문을 찾아가리오?
文章曹植波瀾闊(문장조식파란활) 문장은 조식과 같아 드넓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服食劉安德業尊(복식유안덕업존) 단약 복용한 유안처럼 덕행과 공업 높으시다네.
長笛鄰家亂愁思(장적린가란수사) 이웃의 피리 소리에 시름겨운 생각 어지러운데
昭州詞翰與招魂(소주사간여초혼) 소주자사는 글을 지어 고적의 혼을 불러주시게.
* 촉주인일작(蜀州人日作) : 고적이 촉주에 있을 때 두보에게 지어 보낸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시를 가리킴.
* 청시(淸詩) : 고적의 시를 찬미하는 말임.
* 산질(散帙) : 서질(書帙)을 열어본다는 뜻.
* 장사(壯士) : 고적을 가리킴. 무재(武才) 또한 지녀 다년간 절도사를 지내기도 하였음.
* 합답(合沓) : 모이고 겹쳤다는 뜻. * 요확(寥廓) : 끝없는 하늘.
* 구우편(求友篇) : 두보가 촉땅에 있을 때 고적에게 준 〈송고삼십오서기십오운(送高三十五書記十五韻)〉, 〈수고사군상증(酬高使君相贈)〉 등을 가리킴. 求友는 《詩經·鹿鳴之什·伐木》에 나오는 “저 새들을 보노라니, 벗을 구하는 소리로다.”(相彼鳥兮, 猶求友聲.)라는 구절에서 연유된 말.
* 울울(鬱鬱) : 풍성한 모양. * 광시략(匡時略) : 시대를 바로잡는 지략.
* 금리(錦里) : 두보가 전에 살던 촉땅의 성도를 가리킴.
* 요지(瑤墀) : 옥 계단. 궁전을 앞을 가리킴. * 시신(侍臣): 시종(侍從)하는 신하.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임명되었던 고적을 가리킴. * 명막(冥寞) : 사망과 같음.
* 소상(瀟湘) : 지금 호남성 상수(湘水) 유역으로, 소수가 상수로 유입됨..
* 호두(鄠杜) : 장안성 서남쪽의 호현(鄠縣)과 남쪽 두곡(杜曲). 그로써 장안을 가리킴. 고적은 장안에서 병사하였음. * 조악(鵰鶚) : 수리와 물수리. 맹금류로 고적을 비유한 것임.
* 동서남북(東西南北) : 사방을 떠도는 사람을 가리키며, 두보 자신을 일컬은 것임. 《禮記·檀弓》에 “지금 공구는 동서남북의 사람이다.(今丘也, 東西南北之人.)라는 구절이 있음. 고적의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시에도 ”너 동서남북의 사람에게 부끄럽다.“(愧爾東西南北人)라는 구절이 있음.
* 북신(北辰) : 조정을 비유함.
* 서강(西羌) : 서번(西蕃)과 같음. 토번(吐蕃)을 가리킴. * 충척(充斥) : 충만하다는 뜻.
* 의관남도(衣冠南渡) : 서진(西晉)의 원제(元帝)가 오호(五胡)의 침입을 피해 남쪽으로 천도했을 때 사대부들이 좇아 이주한 것을 가리킴. 여기서는 그를 빌려 토번이 침입하자 대종이 섬주(陝州)로 달아나고 귀족관료가 남으로 피란한 것을 말한 것임.
* 고슬(鼓瑟) : 《楚辭·遠遊》에 “상수의 신으로 하여금 슬을 타게 한다.”(使湘靈鼓瑟兮)라는 구절이 있음.
* 제자(帝子) : 요임금의 두 딸이자 순임금의 아내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가리킴. 전설에 의하면, 순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 창오(蒼梧)의 들에서 죽자 두 아내가 매우 애통하여 상수(湘水)에 투신하였고 이후 상수의 신이 되었다. 어둠 속에 비바람이 칠 때면 물에 떠올라 금을 타고 슬피 노래하며 순임금을 애도한다고 한다. 이 구절은 아황과 여영의 전설을 빌려 한중왕 이우가 왕실의 어려움을 슬퍼하고 있으리란 점을 말한 것임.
* 예거(曳裾) : 옛날 문사의 복식. 깃 아래 달린 앞섶이 땅에 끌리는 옷. * 왕문(王門) : 한중왕 이우의 저택을 가리킴.
* 조식(曹植) : 삼국 위나라의 시인. 위나라의 종실로 진사왕(陳思王)에 봉해졌음. 이우를 그에 비긴 것임.
* 복식(服食) : 장생술의 일환으로 단약을 복용한 것을 이름. * 유안(劉安) : 한고조 유방의 손자로 회남왕(淮南王)에 봉해졌음. 많은 빈객을 예우하며 거느렸으며, 도교 방술(方術)을 좋아해 단약 제조법을 간구하기도 하였음. 이우를 그에 비긴 것임.
* 장적인가(長笛鄰家) : 죽림칠현의 한 명인 서진(晉)의 상수(向秀)가 혜강(嵇康)을 그리워한 일을 가리킴. 혜강이 피살된 후 상수가 그 옛집을 지나다 이웃의 피리 소리를 듣고 지난날을 추억하며 〈사구부(思舊賦)〉를 지었음. 이 구절은 고적을 혜강에 비긴 것임.
* 소주(昭州) : 지금 광서성 평락현(平樂縣). 소주자사 경초선(敬超先)을 가리킴. * 여(與) : 爲와 통함. * 초혼(招魂) : 송옥(宋玉)이 굴원(屈原)을 애도하기 위해 부(賦) 작품인 〈招魂〉을 지은 바 있음. 여기서는 경초선이 고적의 넋을 위로하는 초혼의 시문을 지어주길 청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