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先劉少府新畫山水障歌(봉선유소부신화산수장가) 봉선의 유소부가 새로 그린 산수화 병풍(七言古詩)
현종 천보 13년(754), 60여 일에 걸친 가을장마로 장안 일대에 큰 재해가 발생했다. 농사를 망쳐 미가가 폭등하고 사람들은 굶주렸거. 두보의 가족 역시 끼니를 잇기 어려웠다. 이에 봉선의 양현령(楊縣令)에게 의탁하기 위해 그 곳에 가 기거하였다. 양현령은 두보의 처가쪽 사람으로, 장인인 사농소경(司農少卿) 양이(楊怡)와 가까운 집안사람으로 여겨진다. * 봉선은 지금 섬서성 포성현(蒲城縣)이다. * 소부(少府)는 현위(縣尉)의 별칭. 두보가 봉선현위로 있던 유단(劉單)의 집에서 이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 산수장(山水障)은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을 가리킨다.
堂上不合生楓樹(당상불합생풍수) 당 위는 단풍나무 살기 적합치가 않거늘
怪底江山起煙霧(괴저강산기연무) 괴이해라! 강산이 있고 안개도 피어나다니.
聞君掃却赤縣圖(문군소각적현도) 들으니 그대가 적현의 그림을 그렸다는데
乘興遣畫滄洲趣(승흥견화창주취) 흥에 겨워 창주의 정취를 그림에 담아냈구려.
畫師亦無數 (화사역무수) 화가들이야 역시 무수하게 많아도
好手不可遇 (호수불가우) 좋은 솜씨 만나보긴 어려웁거늘,
對此融心神 (대차융심신) 그림 속에 정신을 녹여 담아냈으니
知君重毫素 (지군중호소) 그대 얼마나 그림을 중시하는지 알겠네.
豈但祁岳與鄭虔(기단기악여정건) 어찌 다만 기악과 정건에 그치리.
筆跡遠過楊契丹(필적원과양거란) 필적이 멀리 양거란을 뛰어넘었네.
得非玄圃裂 (득비현포렬) 현포가 갈라져 그림 속에 들어왔을까?
無乃瀟湘翻 (무내소상번) 소상강 물결 뒤집혀 그림에 들어왔는가?
悄然坐我天姥下(초연좌아천모하) 나를 고요히 천모산 아래 앉아 있게 하고
耳邊已似聞淸猿(이변이사문청원) 귀에는 청랭한 원숭이 울음 들려오는 듯.
反思前夜風雨急(반사전야풍우급) 돌이켜 생각건대 지난 밤 비바람 거세었더니
乃是蒲城鬼神入(내시포성귀신입) 봉선의 귀신이 그림 속으로 들어갔던가?
元氣淋漓障猶濕(원기림리장유습) 병풍 마르기도 전 천지의 원기 흥건히 담아내니
眞宰上訴天應泣(진재상소천응읍) 천신이 위에 아뢰면 하늘마저 응당 감격해 울리.
野亭春還雜花遠(야정춘환잡화원) 들녘 정자에 봄 오고 멀리 꽃들 피어났으며
漁翁暝踏孤舟立(어옹명답고주립) 늙은 어부 어스름 속 외론 배에 딛고 서있네.
滄浪水深靑溟濶(창랑수심청명활) 창랑의 물 깊고 푸른 하늘 드넓기도 하거늘
欹岸側島秋毫末(기안측도추호말) 비스듬한 언덕 가장자리의 섬 자세히도 그렸네.
不見湘妃鼓瑟時(불견상비고슬시) 거문고 타는 상비는 보이지 아니 한다만
至今斑竹臨江活(지금반죽림강활) 지금까지도 반죽은 강가에 자라나고 있구나.
劉侯天機精 (류후천기정) 유후의 천기는 순수하기만 하고
愛畫入骨髓 (애화입골수) 그림 좋아하는 마음 골수에 스몄는데,
自有兩兒郎 (자유량아랑)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으니
揮灑亦莫比 (휘쇄역막비) 붓 적셔 그려냄에 또한 비교할 자 없다네.
大兒聰明到 (대아총명도) 큰 아들은 퍽이나 총명해
能添老樹巓崖裏(능첨로수전애리) 산꼭대기 벼랑에 고목을 그려 넣었고,
小兒心孔開 (소아심공개) 작은 아들은 지혜가 트여
貌得山僧及童子(모득산승급동자) 산승과 동자의 모습을 그려넣었네.
若耶溪 (약야계) 약야계와
雲門寺 (운문사) 운문사여!
吾獨胡爲在泥滓(오독호위재니재) 나 홀로 어찌 진흙탕 속에 묻혀 있으리!
靑鞋布襪從此始(청혜포말종차시) 삼베 버선에 짚신 신고 이제 떠나가려네.
* 소각(掃却) : 붓을 휘둘러 그림을 완성한다는 뜻. * 적현(赤縣) : 본래 경성 인근 천자의 직할지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당대 경조부에 속한 여러 지역 가운데 특히 봉선을 지칭한 것임.
* 견화(遣畫) : 그림을 그려 정을 펼치다. * 창주취(滄洲趣) : 산수에 은거한 자의 정취. 창주는 물가를 가리키며 은사의 거주처를 비유함.
* 호소(毫素) : 그림 그리는 붓과 흰 깁. 회화를 가리킴.
* 기악여정건(祁岳與鄭虔) : 기억과 정건은 작자와 동시대의 화가 이름.
* 양거란(楊契丹) : 수나라 때의 명화가.
* 현포(玄圃) : 신선이 거처한다는 곤륜산의 꼭대기.
* 소상(瀟湘) : 소수(瀟水)와 상강(湘江). 호남성을 흐르는 강물 이름. 장강의 지류이며, 소수는 상강의 상류지역.
* 천모(天姥) : 절강성 신창현(新昌縣)에 있는 명산.
* 포성(蒲城) : 봉선의 옛이름.
* 원기(元氣) : 천지자연의 기. 이 구절은 적셔진 병풍의 화폭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림 속에 자연의 원기가 한 가득 충실히 담겨져 재현되었음을 의미함.
* 진재(眞宰) : 천신(天神)을 가리킴.
* 창랑(滄浪) : 푸른 물결. * 청명(靑溟) : 본래 청색의 큰 바다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하늘을 가리키는 청명(靑冥)의 와전으로 여겨짐.
* 상비(湘妃) : 순임금의 두 비(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상수(湘水)의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 반죽(斑竹) : 순임금이 창오의 들에서 죽은 뒤 두 비가 와서 흘린 눈물이 대나무를 적셔 반죽(斑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 유후(劉侯) : 유소부를 가리킴. 侯는 사대부에 대한 존칭.
* 휘쇄(揮灑) : 붓을 휘두르며 그림을 그려냄.
* 약야계(若耶溪) : 절강성 소흥(紹興)에 있는 시내. 전설에 서시(西施)가 빨래하던 곳.
* 운문사(雲門寺) : 운문산에 있는 사찰로 약야계를 굽어보고 있음. 경관이 빼어나며 양(梁)의 하윤과 하구, 하점 삼형제가 운문사에 은거하였음.
* 니재(泥滓) : 진흙탕 탁한 물. 당시 사회를 비유한 것임.
* 청혜포말(靑鞋布襪) : 본래 평민이 착용하는 신과 버선을 가리키며, 은사의 생활을 비유하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