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懷(술회) (五言古詩)
숙종 지덕 2년(757) 여름, 봉상(鳳翔 : 섬서성 보계시 지역)에서 좌습유(左拾遺)에 배수된 이후 지은 것. 이해 4월, 억류 중이던 두보는 장안을 탈주해 숙종이 있던 봉상으로 갔으며, 숙종은 기특하게 여겨 좌습유에 임명하였다. 그 사이 두보는 가족과 이별한지 근 1년이 되어가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국난으로 위태로운 시절에 새로 관직을 받자마자 가족을 찾아 다녀오기도 어려웠다. 이에 몹시도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당장 찾아나설 수 없는 심정을 애달피 노래하였다.
去年潼關破(거년동관파) 지난 해 동관이 격파된 이래
妻子隔絶久(처자격절구) 처자식과 오래도록 떨어져 있었고,
今夏草木長(금하초목장) 금년 여름 초목이 무성했을 때
脫身得西走(탈신득서주) 탈출해 서쪽으로 달아날 수 있었네.
麻鞋見天子(마혜견천자) 짚신 신은 채 천자를 알현했으며
衣袖見兩肘(의수견양주) 옷소매엔 양 팔꿈치 드러났으니,
朝廷愍生還(조정민생환) 조정에선 살아옴을 가엾게 여겨주었고
親故傷老醜(친고상로추) 친구들은 늙고 추레해졌다며 상심하였지.
涕淚受拾遺(체루수습유) 눈물 흘리며 좌습유 벼슬을 받게 됐으니
流離主恩厚(유리주은후) 떠돌던 내게 임금의 은혜 두터웠다만,
柴門雖得去(시문수득거) 비록 집에 갈 수 있다 할지라도
未忍卽開口(미인즉개구) 보내 달라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네.
寄書問三川(기서문삼천) 삼천현에 편지 보내 안부를 물어봤으나
不知家在否(부지가재부) 가족이 거기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데,
比聞同罹禍(비문동리화) 근래 듣자니 그쪽도 똑같이 병화를 입어
殺戮到雞狗(살륙도계구) 닭과 개 잡듯 마구 살육을 하였다 하네.
摧頹蒼松根(최퇴창송근) 푸른 솔 뿌리 곁엔 몸 꺾어진 시체가 있고
地冷骨未朽(지랭골미후) 땅은 차가워 해골이 썩지 않는다 하는데,
幾人全性命(기인전성명) 온전히 목숨 부지한 이들이 몇이나 되랴?
盡室豈相偶(진실기상우) 온 식구가 어떻게 서로 모일 수나 있을까?
山中漏茅屋(산중루모옥) 산중의 초가집은 비가 새고 있을 터
誰復依戶牖(수부의호유) 누가 다시 창에 의지해 집을 지키리?
嶔岑猛虎場(금잠맹호장) 험준한 산에 맹호처럼 반군 활개를 치니
鬱結廻我首(울결회아수) 가슴 꽉 막혀 머리 이리 저리 흔들어 보네.
自寄一封書(자기일봉서) 한 봉의 편지를 써서 보낸 이래로
今已十月後(금이십월후) 지금 벌써 열 달이나 지난 뒤건만,
反畏消息來(반외소식래) 소식이 올까봐 도리어 두려워지니
寸心亦何有(촌심역하유) 정신마저 어디로 달아나고 없는가?
漢運初中興(한운초중흥) 당나라 운세 이제 막 중흥하고 있으니
生平老耽酒(생평노탐주) 평생 늙어서도 술을 즐기게 되었으나,
沈思歡會處(침사환회처) 기쁘게 가족 만날 날 골똘히 생각하다가도
恐作窮獨叟(공작궁독수) 곤궁하고 고독한 노인 될까 염려가 되네.
* 거관(去年) : 현종 천보 15년(756), 숙종 지덕 원년. 그 해 6월에 안록산 반군이 동관을 격파하고 장안을 함락시켰다. * 동관(潼關) : 섬서성 위남시(渭南市) 동관현의 북쪽에 위치. 북쪽은 황하와 접해 있으며, 남쪽 산허리에 자리잡았다. 동쪽에서 장안이 있는 관중(關中)으로 진격할 때 거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 처자(妻子) : 부주에 있는 가족과 소식이 단절된지 1년이 되어 감.
* 서주(西走) : 장안에서 숙종이 있는 서쪽의 봉상으로 탈주한 것을 가리킴.
* 습유(拾遺) : 문하성에 속한 종8품의 간관(諫官). 임금에게 풍간하고 인재를 추천하는 직책.
* 시문(柴門) : 자기의 보잘 것 없는 집을 비유함.
* 삼천(三川) : 부주에 속한 현(縣) 이름. 작자의 처자식이 그 곳의 강촌(羌村)에 있었음.
* 촌심역하유(寸心亦何有) : 정신이 나가고 없어 제 정신이 아니라는 뜻. 하유는 '何在'와 같다.
* 한운(漢運) : 한나라의 국운. * 초중흥(初中興) : 중흥하기 시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