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아행(彭衙行) 팽아의 노래 (五言古詩)
숙종 지덕 2년(757) 가을에 지음. 안사의 난이 터지자 두보는 가족을 백수현(白水縣)으로 옮겼다. 그러다 전년 6월에 안록산이 동관(潼關)을 격파하자 다시 부주(鄜州)로 피난시켰다. 그 도중에 두보의 가족은 갖은 고생을 했는데, 이 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지은 것이다. 팽아는 백수의 옛이름이다. 행(行)은 악부가곡 체재의 하나.
憶昔避賊初(억석피적초) 전에 피난 가던 때를 떠올리나니
北走經險艱(북주경험간) 북으로 가며 험난함을 겪었다네.
夜深彭衙道(야심팽아도) 팽아로 가는 길에 밤은 깊었으며
月照白水山(월조백수산) 백수산에는 달이 비추고 있었지.
盡室久徒步(진실구도보) 온 식솔 오래도록 도보로 걸어갔기에
逢人多厚顔(봉인다후안) 사람들 만나게 되면 퍽은 부끄러웠고,
參差谷鳥吟(참치곡조음) 어수선히 골짝의 새들은 울어댔으며
不見遊子還(불견유자환) 집으로 돌아가는 행인은 뵈지 않았네.
癡女饑咬我(치녀기교아) 철부지 딸은 배고파 나를 깨물었으며
啼畏虎狼聞(제외호랑문) 울 때면 범과 이리 들을까 두려웠으니,
懷中掩其口(회중엄기구) 품에 안고 아이 입을 막으려 들면
反側聲愈嗔(반측성유진) 몸부림치며 더욱 큰 소리로 악을 썼었지.
小兒强解事(소아강해사) 어린아이 억지로 알겠다는 체를 하더니
故索苦李餐(고색로리찬) 종종 떫은 자두라도 먹으려 찾곤 하였고,
一旬半雷雨(일순반뢰우) 열흘에 반은 우레 치고 비가 내렸으니
泥濘相攀牽(니녕상반견) 진흙탕을 서로 잡고 끌며 걸어갔다오.
旣無禦雨備(기무어우비) 비를 막아 줄 우비도 가진 게 없었으며
徑滑衣又寒(경활의우한) 길 미끄럽고 옷은 또 차갑게 젖어버렸고,
有時經契濶(유시경계활) 때때로 길 가기 힘든 곳 지나갈 때엔
竟日數里間(경일수리간) 종일토록 몇 리 밖에 가지 못하였다네.
野果充糇糧(야과충후량) 야산의 열매로 말린 밥 대신 충당했으며
卑枝成屋椽(비지성옥연) 나지막한 나뭇가지로 집을 삼기도 했고,
早行石上水(조행석상수) 아침이면 바위 위로 물을 건너갔으며
暮宿天邊煙(모숙천변연) 저물녘엔 하늘가 안개 속에 묵기도 했네.
少留同家漥(소류동가와) 잠시 동가와에서 머물렀다가
欲出蘆子關(욕출로자관) 노자관으로 나가고자 했으니,
故人有孫宰(고인유손재) 친구 중에 손재라고 하는 이 있어
高義薄曾雲(고의박증운) 하늘의 구름에 닿을 듯 의기 드높았네.
延客已曛黑(연객이훈흑) 우리를 맞이할 때 날 이미 어두웠으니
張燈啓重門(장등계중문) 등불 늘어놓고 중문도 열어 두었으며,
煖湯濯我足(난탕탁아족) 따뜻한 물로 내 발을 씻게 하고는
剪紙招我魂(전지초아혼) 전지를 가지고 나의 넋을 불러주었네.
遂空所坐堂(수공소좌당) 이윽고 거처하던 방을 비워주고는
安居奉我歡(안거봉아환) 편안히 있게 해 나를 기쁘게 했거늘,
從此出妻孥(종차출처로) 그런 후에 처자를 불러 나오게 했으니
相視涕闌干(상시체란간) 서로 보며 눈물 흥건히 쏟고 말았지.
衆雛爛漫睡(중추난만수) 곤하게 잠을 자는 어린애들을
喚起霑盤飧(환기점반손) 깨워 그릇에 담긴 밥을 먹였는데,
誰肯艱難際(수긍간난제) 어렵고 힘든 시절에 그 누가 기꺼이
豁達露心肝(활달로심간) 마음을 활짝 열고 도와주려 하겠나!
誓將與夫子(서장여부자) “맹서하나니 장차 선생과 함께
永結爲弟昆(영결위제곤) 영원히 형제의 연을 맺으렵니다.”
別來歲月周(별래세월주) 헤어지고 1년의 세월 지나갔건만
胡羯仍構患(호갈잉구환) 오랑캐는 여전히 우환을 만들어대네.
何當有翅翎(하당유시령) 어이 해야 날개와 깃털이 생겨나
飛去墮爾前(비거타이전) 그대 앞에 날아가 내려앉아 보려나.
* 북주(北走) : 부주는 백수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 후안(厚顔) : 부끄럽다. 난처하다. 계면쩍다.
* 참치(參差) : 어수선히 새가 울어대는 모양을 가리킴.
* 반측(反側) : 몸을 옆으로 뒤집으며 몸부림친다는 뜻.
* 고(故) : 故故와 같음. 매번, 누차, 늘상. * 고리(苦李) : 씁쓰름한 야생 자두.
* 계활(契濶) : 노고(勞苦)의 뜻. 길 가기 고생스럽고 힘든 곳을 가리킴.
* 후량(糇糧) : 말린 양식. 휴대하기 편하게 만든 먹거리.
* 동가와(同家漥) : 작자의 친구 손재(孫宰)가 있던 곳. 팽아와 부주 사이의 삼천현(三川縣)
* 노자관(蘆子關) : 팽아와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영무로 통하는 주요 통행로. 당시 숙종이 영무에 있어 두보는 가족을 데리고 곧장 가려했는데, 그러자면 노자관을 경유해야 함.
* 손재(孫宰) : 이름이 재(宰)이거나, 혹은 현령(縣令)을 지낸 이력이 있어 재(宰)라고 지칭한 것임.
* 박(薄) :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깝다는 뜻. * 증운(曾雲) : 층운(層雲)과 같음. 층층의 중첩된 구름.
* 전지초아혼(剪紙招我魂) : 전지는 종이를 폭이 좁고 길다란 깃발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가리킴. 심한 고충을 겪어 넋이 나간 사람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지를 가지고 혼을 불러들이던 미신 풍속이 있었음. 여기서는 실제로 전지를 가지고 초혼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안정을 느끼게끔 손재가 여러모로 배려해 주었다는 의미임.
* 난간(闌干) : 종횡으로 눈물이 흐르는 모양. 눈물이 부단히 흐르는 모양.
* 중추(衆雛) : 여러 마리 어린 새. 어린 딸을 비유한 것임.
* 반손(盤飧) : 접시나 그릇 따위에 담긴 저녁밥을 가리킴.
* 활달(豁達) :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큼.
* 부자(夫子) : 손재에 대한 존칭.
* 세월주(歲月周) : 1주년이 되었다는 뜻.
* 호갈(胡羯) : 반란군을 가리킴. 안록산의 부계가 북방 유목민족인 갈호(羯胡)에게서 나와 이리 지칭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