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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安吏(신안리) (五言古詩)

by 오대산인

新安吏(신안리) (五言古詩)


삼리(三吏), 삼별(三別) 가운데 한 수.

시의 원주에 “경성을 수복한 이후 지음. 비록 장안과 낙양을 수복했지만, 반군이 아직 널리 퍼져있다.”(收京後作, 雖收兩京, 賊猶充斥.)고 되어 있음. 이 시와 그 뒤의 5수 시는 ‘삼리(三吏)’와 ‘삼별(三別)로 일컬어지며, 두보 시의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6 편의 시는 모두 숙종 건원 2년(759) 봄 낙양에서 화주 임소로 가는 도중 지어졌다. 그 직전 겨울에 안사 반군의 수령 안경서(안록산의 아들)는 업성(鄴城)을 점거하고 있었고, 곽자의 · 이광필 · 왕사례 등 아홉 절도사는 60만 대군으로 포위하였다. 그러나 전군을 통솔하는 주장이 없어서 공격에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3월 들어 사사명이 업성의 포위를 풀려고 하북에서 원병을 거느리고 왔으며, 당군은 대패하여 서쪽으로 퇴각했다. 그리고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무법하게 무자비한 징병을 시행하였다. 두보는 화주로 돌아가는 도중 그 참상을 목격하고 이 시를 지은 것이다. * 신안은 하남도(河南道)에 속했으며, 지금 하남성 신안현에 해당한다. 낙양에 인접한 곳이다.



客行新安道(객행신안도) 나 신안 길을 가노라니

喧呼聞點兵(훤호문점병) 떠들썩 징병 점호하는 소리 들려오네.

借問新安吏(차문신안리) 신안의 아전에게 물었노라.

縣小更無丁(현소갱무정) “고을이 작으나 어찌 장정이 없겠소?”

府帖昨夜下(부첩작야하) “징병 문서가 어젯밤 내려와서

次選中男行(차선중남행) 다음 차순으로 중남을 뽑아 보냅니다.”

中男絶短小(중남절단소) “중남이라면 몹시 왜소할 텐데

何以守王城(하이수왕성) 어떻게 낙양성을 지켜내겠소?“

肥男有母送(비남유모송) 살찐 사내아이는 어미가 전송을 하나

瘦男獨伶俜(수남독령빙) 수척한 사내아이는 홀로이 외로운데,

白水暮東流(백수모동류) 강물은 저물도록 동으로 흘러가지만

靑山猶哭聲(청산유곡성) 청산에는 아직도 통곡 소리 들려오네.

莫自使眼枯(막자리안고) “눈이 마르도록 울지를 말고

收汝淚縱橫(수여루종횡) 흥건한 너희의 눈물을 거둬들이게.

眼枯卽見骨(안고즉견골) 눈이 마르고 뼈가 드러난다 하여도

天地終無情(천지종무정) 하늘과 땅이야 끝내 무정하리니!

我軍取相州(아군취상주) 아군이 상주를 탈환한다고 하여

日夕望其平(일석망기평) 밤낮으로 평정되길 바라왔으나,

豈意賊難料(기의적난료) 어찌 알았으랴, 반군을 헤아리기 곤란할 줄을.

歸軍星散營(귀군성산영) 패해 돌아온 군사들 병영으로 별처럼 흩어졌다.

就糧近故壘(취량근고루) 가까운 예전의 성루로 가서 군량을 먹고

練卒依舊京(련병의구경) 신병 훈련은 낙양 쪽에서 한다고 하네.

掘壕不到水(굴호부도수) 참호도 물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얕게 파고

牧馬役亦輕(목마역역경) 군마 기르는 일도 힘이 들진 않을 것이네.

況乃王師順(황내왕사순) 하물며 관군은 순리의 군대이니

撫養甚分明(무양심분명) 보살펴주기도 심히 분명하게 할 것이라네.

送行勿泣血(송행물읍혈) 떠나보내며 피눈물일랑 흘리지들 말게나.

僕射如父兄(복야여부형) 복야 곽자의장군이 부형처럼 살펴주리니.”


* 객(客) : 두보 자신을 일컬은 것임. * 신안(新安) : 하남 신안현. 지금 낙양의 서쪽 지역.

* 정(丁) : 당나라 제도에 20세 남성을 정이라 하는데, 현종 천보 3년(744) 22세로 고쳤다.

* 부첩(府帖) : 징병 문서를 가리킴. 당대에 부병제(府兵制)를 시행해 군첩(軍帖)을 이렇게 부름.

* 중남(中男) : 당나라 제도에 16세 남자를 중남이라 하는데, 현종 천보 3년에 18세로 고쳤다.

* 상주(相州) : 업성을 가리킴. 지금 하남 안양(安陽).

* 구경(舊京) : 낙양을 가리킴.

* 복야(僕射) : 관직명. 당대에 재상에 해당함.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키며, 숙종 지덕 2년(757) 5월에 좌복야에 임명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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