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壕吏(석호리) (五言古詩)
삼리(三吏), 삼별(三別) 가운데 한 수.
숙종 건원 2년(759) 봄, 곽자의(郭子儀) 등 아홉 절도사가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업성(鄴城)의 안경서(安慶緖)를 공격하다 위주(魏州)에서 원병을 끌고 온 사사명(史思明)에게 대패하였다. 관군은 광범위한 징병으로 낙양 전방의 전투력을 보강해 사사명의 서진을 저지하고, 또 후방의 병력을 채워 동관(潼關)의 방어력을 증대시키고자 하였다. 그 즈음 두보는 신안현(新安縣)을 떠나 서쪽으로 가다 석호라는 마을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비록 후방이라고는 하나 늙은이마저 강제로 동원해 복무시키는 폐단에 매우 유감스러워 이 시를 남겼다. 석호는 지금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 섬주구(陝州區) 동북 쪽 지역이다.
暮投石壕村(모투석호촌) 날 저물어 석호촌에 투숙했더니
有吏夜捉人(유리야착인) 아전이 밤에 사람을 잡아가누나.
老翁踰牆走(로옹유장주) 할아범은 담 넘어 도망을 치고
老婦出門看(로부출문간) 할멈은 문을 나서며 살펴본다네.
吏呼一何怒(리호일하로) 아전의 호통 어찌 그리 노여웁고
婦啼一何苦(부제일하고) 할멈의 울음 어찌 그리 괴로운가.
聽婦前致詞(청부전치사) 할멈이 앞에서 하는 말 들어보니
三男鄴城戍(삼남업성수) “아들 셋이 업성으로 출정했습죠.
一男附書至(일남부서지) 아들 하나가 부쳐 온 편지 왔는데
二男新戰死(이남신전사) 두 아들이 요사이 전사했답니다.
存者且偸生(존자차투생) 산 놈이야 구차하게 살아가겠지만
死者長已矣(사자장이의) 죽은 놈이야 영원히 끝인 게지요.
室中更無人(실중갱무인) 집안에는 다시는 사람이 없고
惟有乳下孫(유유유하손) 오로지 젖먹이 손자뿐이랍니다.
孫有母未去(손유모미거) 손자에겐 어미 있지만 갈 수가 없고
出入無完裙(출입무완군) 가려해도 성한 치마가 없답니다.
老嫗力雖衰(로구력수쇠) 이 늙은 할미가 힘 비록 쇠약하지만
請從吏夜歸(청종리야귀) 아전나리 따라 밤길에 나서려 합니다.
急應河陽役(급응하양역) 급히 하양의 전역에 응한다면은
猶得備晨炊(유득비신취) 외려 아침밥이라도 지을 수 있겠지요.”
夜久語聲絶(야구어성절) 밤은 이슥해지고 말소리 끊어졌는데
如聞泣幽咽(여문읍유열) 흐느껴 우는 소리 들리는 듯 싶었네.
天明登前途(천명등전도) 날 밝아 내가 길에 오를 때에는
獨與老翁別(독여로옹별) 오로지 늙은 할아범과 작별하였네.
* 업성(鄴城) : 지금 하남 안양시. 아홉 절도사의 군대가 여기서 패배하였음.
* 하양(河陽) : 지금 하남 맹현(孟縣)의 서쪽. 당시 곽자의가 하양을 수비하고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