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과 내면세계
캔버스 가득 오렌지빛으로 물들어 있다. 아랫면은 더욱 진한 주황색으로 윗면은 그보다 밝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색이외의 형상은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형상이 없는 그림을 추상화라고 한다. 그리고 특히 색만으로 표현된 로스코의 추상화를 색면추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로스코 자신은 자신의 작품이 색면추상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출신의 유대인 이민자로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주해 예일대를 중퇴한 후 미술을 시작해 신화주제, 초현실주의, 멀티폼을 거쳐 색면회화로 나아갔다. '티쿤올람'은 유대교의 핵심교리로 세계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일부는 신의 협조 파트너인 인간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기때문에 세상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들은 창조작업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스코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진보로 인해 제거된 초자연적인 요소를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예언자와 신탁이 사라지면서 생긴 빈 공간을 예술가가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를 두고 윌렘 드 쿠닝은 자신의 역할에 최면이 걸린 인물이다. 그것은 단 하나의 역할, 즉 메시아의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로스코는 예술의 상업화에 앞장 선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을 싫어해서 그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인사도 없이 바로 돌아서서 가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로스코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비극. 고독. 숭고함 같은 보편적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고 색과 빛 자체가 인간의 영혼에 직접 작용한다고 믿었다. 로스코는 '나는 색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그린다'라고 하면서 '내 그림은 작은 게 아니다. 큰 건 당신이 그 속에 들어가길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단순한 색면을 통해 설명없이도 감정과 영적체험을 끌어내길 원했고 '숭고한 예술'을 만들고자 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는 로스코의 작품만을 위한 건축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채플이 건립되어 모든 종교의 경전을 두고 종교와 관계없이 자신의 감정과 영적체험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 그는 66세에에 우울증과 건강문제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최고의 추상표현주의화가로 불리며 세계를 바로잡고자 메시아 역할을 자처했던 그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에게는 어떤 세계평화보다도 자신의 내면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타인에게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에 기여하는 것,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나의 내면은 어떠한가? 평화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