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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이끌림

마크 로스코_ Orange and Yellow, 1956

by 전애희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_Orange and Yellow, 1956 오일, 231.1x177.8 cm

서산 너머 햇님이 숨바꼭질할 때


서산 너머 햇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수풀 속의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아니 아니 아니죠 켜 논 촛불 아니라

저녁 먹고 놀러 나온 아기 별님이지요


어둠이 내려앉고 아기별이 놀러 나올 때쯤 도시는 노랑빛 주황빛으로 새 단장을 하며 빌딩 숲 사이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밝혀준다. 따스한 불빛이 깔린 길을 지나치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 어떤 이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어떤 이는 혼자만의 휴식처로, 어떤 이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총총 사라진다.

높고 낮은 아파트 창을 통해 불빛이 새어 나온다. 노란색으로 물든 창, 주황색으로 물든 창들이 수놓은 빛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부른다. 1층, 2층, 3층...... 한층 한층 세어본다. 우리 집을 밝히는 빛에 미소를 짓고 1층 공동 현관을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집집마다의 서사가 빛을 타고 창밖으로 나온다. 집집마다 흘러나온 이야기 속에는 웃음과 슬픔, 기쁨과 노함, 감사와 서운함 수많은 감정들이 함께 들어있다.







주황에 끌릴 때

지난봄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모두에게: 초콜릿, 레모네이드 그리고 파티》와 기획전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 두 전시가 함께 개막식을 가졌다. 어떤 전시로 도슨트를 할까 고민하던 난 망설임 없이 새로운 전시 도슨트를 결정했다. 1관부터 4관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전시해설도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 되겠지만 5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을 선택했다. 채지민 작가와 함미나 작가의 주황이 날 끌어당겼다. '주황'은 먼저 내 시선을 잡고 놓지 않더니 사고의 흐름마저 가로막았다. 채지민 작가의 강렬한 주황은 함미나 작가의 작품 속에서 따스한 주황으로 변했다. 주황은 두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연두와, 파랑과 어우러지며 더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변하며 해맑은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날의 선택은 도슨트 명찰을 목에 걸고, 마이크를 손에 쥐고 전시실을 찾을 때마다 나를 웃게 한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들어오는 전시실에서 마주한 주황은 오렌지처럼 상큼하기도 하고, 가을비로 어둑어둑한 전시실을 햇살처럼 비춰주기도 한다. '주황' 색을 가리키는 단어는 하나지만 색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매번 달라짐을 아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하다.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릴 때

2015년 그때의 난 워킹맘으로 4살 6살 두 아이를 챙기며 유치원 원감 역할을 하기에도 하루가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런 내가 '마크 로스코'라는 이름은 몰라도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였다는 사실과 색으로 가득 찬 작품을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는 건 마크 로스코의 전시가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였던 것 같다. 2023년 <미술을 공부합니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으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단색화를 마주하며 '마크 로스코'라는 예술가에 대해 어깨너머로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픈 마음에 《뉴욕의 거장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의 친구들》전시를 찾았다. 생각보다 짧은 전시에 조금은 당황하고,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색으로 가득 찬 작품이 보이질 않아 아쉬웠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십자가, 1941-42>로 만족해야 했다. 그가 그린 마지막 인물화 중 하나라는 글귀에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림을 바라보았다. 잘린 손과 발에 못이 박혀있고, 고통에 발개진 얼굴은 공처럼 굴러가는 듯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고통이 내 심장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종교적 이미지에 자신만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로 표현하며 끊임없이 예술적 방향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그 안에 수평과 수직의 질서가 있었다.

마크 로스코_ 십자가, 1941-42


마크 로스코는 '색'이라는 매체의 경계를 따스하게 뭉개고, 단순한 네모를 크고 작게 위치를 달리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린다. 이제 그림이 건넨 노크에 내 마음의 문을 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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