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Rothko <Orange and Yellow>
1+1=3
연인
마크 로스코의 Orange and Yellow 그림을 가만 본다. 두 가지 색이 합쳐져 테두리 색을 창조했다. 맞닿은 색의 경계는 흐릿하게 서서히 닮아간다. 무더워 지치던 여름이 지났다. 가을이 왔다. 몇 주간의 짧은 가을을 충분히 누려보려 한다. 오랜만의 가슴이 콩닥거리는 연애 시절 같다. 한 해에 몇 주, 짧은 시간의 가을을 나는 늘 기다린다. 연인이 없어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주위 친구들 직장동료들의 남자친구, 소개팅 이야기 선보러 간 이야기부터 결혼 준비하는 과정 이미 기혼이었던 동료들의 이야기까지 그때는 그렇게나 주위 사람들 이야기로 내 인생이 바삐 돌아간 느낌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인 송사리(친구 별명)와 오랜만에 연락했다. 노처녀가 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봐 주는 친구였다. 나 자신도 독특한 취향을 가진 터라 연애가 쉽지 않았다. 상대도 이런 독특한 나를 호감 느끼고 귀여워해야만 가능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기대감도 없었다. 몇 번의 선 자리, 친구들의 소개팅으로 이미 기대감은 사라진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자를 볼 때 뭘 가장 우선순위로 보냐?” 송사리가 물었다. “키 큰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꿈이고 일단, 착해야 해. 선하지 않으면 어렵다.” 정말 착하고 선한 사람을 만났다. 186센티미터의 큰 키, 사슴같이 착한 눈을 한 사람이었다. 몇 안 되던 연애로 성숙하지 못한 나를 만나 연애 시절 꽤 고생했다. 남자친구에 대한 결핍도 있었던 것인지 방어적인 태도로 몇 번이나 그를 울렸다. 지나고 보면 보이는 것을 그때는 왜 그랬을까. 요즘 연예 프로그램이 많은 데 보다 보면 과거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출연자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각자 살아오다 주황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1년 반의 서툰 나의 연애는 늘 꿈같이 기억된다. 가끔 들춰보면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다.
부부
나는 그가 좋았고, 그도 나를 좋아했다. 이 얼마나 신기한 인연인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도 결혼 적령기에 나타난 키도 크고 내 눈에 상당히 귀여운 남자가 나도 좋다 하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싶었다. 눈떠보니 결혼식이 끝났더라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처럼 나도 망설임 없이 결혼했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맞추어 갈 것이 늘어나고 생활을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크고 작은 다툼도 해봤다. 상처가 되는 말을 서로 했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마음속 응어리가 없어서 다행이다. 신혼은 노란색의 나와 붉은색의 상대를 서로 섞지 못해 안달 났다. 해야 할까. 서로 섞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과 우려가 깊었다.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시간과 서로의 노력을 왜 그리 조급하게 바라봤던 걸까. 마치, 내가 선택하고 사랑한 그 사람과의 결론이 어떤지 조급하게 답을 보려 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알게 될 관계일 텐데도 1년 반의 연애의 정답지를 어서 찾고 파했다.
9년 차인 지금은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철이 없던 나는 인제야 알게 된 것이 참 많다. 그 시간 동안 곁에서 때론 힘들었을 텐데 부단히 기다려 준 그에게 고맙다. 나 같은 사람을 나는 참지 못했을 것 같다.
아이
아이를 생각하지 않고 여행 다니던 부부였다. 매주 여행 다니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수입의 절반을 여행 다니고 살고 싶어졌다. 아이를 가지는 문제만큼은 늘 내 마음이 준비되면 하자고 하던 그 덕분에 조급함은 없었다. 어쩌면 둘만 사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 중반으로 가던 어느 날 결심이 섰다. ‘노산’은 하고 싶지 않아. 라는 그 하나 때문에 생물학적 나이로 서른다섯을 넘기지 않고 아이를 가졌다. 남편과 나 모두 딩크족을 외치던 때가 무색하게 기다려 가진 아이라서 애틋했다.
아이와 나의 색 또한 달랐다. 아이는 노란색 나는 붉은색. 남편과의 노랑과 붉은 관계가 아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이다. 작디작은 생명체로 나와 연을 맺고 내가 지켜주어야 할 나의 아이. 먼 훗날에는 나를 지켜줄 아이 같기도 하다. 그림을 가만히 보니 노랑과 붉은색을 감싸 안고 주황이 보인다. 나와 아이와 남편, 합을 맞춰 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인생. 그 그림이 바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