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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단편소설>_오소이의 색

미술단편소설|느림의 식탁, 치유의 문장들

by 김상래

이 단편 소설은 낸시 윌슨의 음악을 틀어놓고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다가 몇 시간 만에 쓰게 되었습니다. 미술 에세이에 이어 미술 단편 소설을 써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지어져 힐링이 되었습니다. 쓰는 일이 즐거운 일상



<로스코의 색 앞에서 숨을 고르고, 한 접시의 온기에서 다시 서는 이야기>

Mark Rothko/Orange and Yellow (1956)

[미술 단편 소설]_오소이의 색

낸시 윌슨의 ‘Tell Me the Truth’가 라디오에서 낮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유리문 틈으로 바닷바람이 천천히 기어들어와 마루 아래 내 발끝을 스쳤다. 아침, 히구마는 노란빛과 주홍빛이 맞닿아 있는 커다란 색의 공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마크 로스코는 1903년 제정러시아에서 태어났다. 젊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작업실로 삼았고, 1950·60년대에 이르러 ‘컬러필드’를 완성했다. 그는 형상을 지워냈다. 거대한 색면을 캔버스에 겹쳐 놓았다. 선이나 서사가 아니라 색의 온도와 호흡으로 말을 대신하려는 몸짓이었다. 색과 색은 서로 스며들었고, 가장자리는 흐려졌으며 색은 번져나갔다. 색이 번지는 자리로 관람자는 천천히 들어선다. 말 대신 숨으로 응답한다. 그 앞에서는 말이 쉬워지고 숨이 깊어졌다.


그림은 이에섬의 작은 식당, ‘오소이’의 낮은 마루 벽에 걸려 있었다. 오소이. 느리다. 식당 주인의 이름은 우미우시, 달팽이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그는 느리고 꾸준한 태도로 음식을 빚었고, 인내와 섬세함이 그의 요리에서 고스란히 배어 나왔다. 그는 한때 위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대 위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그보다 앞서 큰 교통사고를 겪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몸이 산산이 부서진 경험이었다. 뼈와 살이 아물어 가는 동안 무엇이 중요한지 배웠다. 배운 그대로 주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의 음식은 소리 없이 놓이는 처방이었다. 한 숟가락마다 몸이 조금씩 반응했다. “천천히 드세요.” 그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약속이었다. 우미우시는 자신이 겪은 시간을 음식을 통해 내놓았다. 그 시간은 우리를 안전히 지켜 주는 시간이 되었다.


히구마(불곰)는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도시에서 소소하게 글을 쓰던 사람. 이미 세 권의 책을 펴낸 적이 있었지만, 크게 유명하지는 않았다. 문장이 멈추었다. 멈춘 문장은 그를 괴롭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어떤 날 이후로 그는 글을 잃었다. 그는 기차와 배를 건너 이에섬으로 왔다. 아무 이유 없이, 혹은 모든 이유를 품고.


첫날, 히구마는 오소이의 마루에 앉아 로스코의 색을 오래 응시했다. 노란빛은 아침의 안도 같았고 주홍은 땅의 체온 같았다. 가장자리는 매끈하게 흐려져서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안에서 그의 숨은 천천히 길어졌다. 음식은 더디게 나왔고 그것이 좋았다. 된장국의 김이 몽글하게 올라오면 그는 숟가락보다 먼저 숨을 맞추었다.


우미우시는 건강한 식단을 단순한 레시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한 접시는 사람의 일상 전체를 바꾸는 작은 약속이었다. 우미우시는 조용히 말했다. “음식은 기운을 들여보내는 일이에요.” 소금의 양, 불의 세기, 채소의 익힘. 모든 것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닿았다. 히구마는 그 섬세한 손길을 관찰하며 손을 조금씩 풀었다.


재즈가 낮게 깔려 있었다. 피아노의 여린 선율, 브러시 드럼의 속삭임, 베이스의 느린 숨결. 음악이 공간을 풀면 색은 더 온화해지고 음식은 더 친절해졌다. 그 조합은 물리적 치유와 정신적 위안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의식 같았다. 히구마는 그 의식에 참여했다. 말 대신 듣고, 쓰기 대신 숨을 내쉬었다.


계절이 섬에 쌓였다. 히구마는 매일 마루에 앉아 그림을 보았고, 식당 한 귀퉁이의 작은 책상에서 문장을 이어 나갔다. 어떤 날은 단문으로, 또 다른 날에는 장문으로. 단문이 그의 가슴을 탁 때렸고 장문이 그 여운을 끝까지 밀었다. 단문과 장문의 리듬이 그의 문장을 다시 살려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문장들 사이에 ‘삶을 향한 온기’가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우미우시는 가끔 병원 이야기를 꺼냈다. 수술대가 흔들렸던 순간, 회복실의 긴 밤들, 그리고 다시 밥을 삼키게 된 첫날의 소박한 기쁨. 그 이야기들은 낡은 상처가 아니라 그가 견뎌낸 시간의 지도였다. 히구마는 그 이야기를 안으로 넣었다. 소설의 한 문장처럼, 산문의 한 줄처럼, 혹은 일기의 토막처럼.


섬에서 보낸 계절이 더해졌고 히구마는 결국 두 권의 책을 완성했다. 제목은 적당히 낯설었고 문체는 섬의 바람과 같은 호흡을 가졌다. 두 권은 시리즈로 동시에 출간되었고, 새로 쓴 시리즈는 그가 이전에 펴낸 세 권의 책과는 결이 전혀 달랐다. 이전의 책들이 조용한 단상과 연속된 기억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상실을 다시 쓰는 방식으로 문장 자체를 바꿔놓는 더 넓은 시도였다. 도시는 그 문장들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느린 상처를 찾았고, 그것을 읽은 이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두 권은 서서히 입소문을 탔다. 어느 순간 히구마의 이름은 서점의 진열대에서, 인터뷰의 말미에서, 독자의 손에서 울렸다. 베스트셀러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지만, 히구마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오소이의 마루에서 무엇인가를 회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 후 잠시 도시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의 책에 해석을 붙였고 그는 라디오에 나오기도 했다. 그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늘 같았다. “천천히. 서로의 온도를 존중하자.” 문학적 수사가 아니었다. 경험이 빚어낸, 말없는 권유였다.


히구마는 다시 이에섬으로 돌아왔다. 오소이는 느릿느릿 시간을 풀어냈다. 우미우시는 한결같이 정성으로 식탁을 다듬었다. 그의 손은 익숙했고, 그 손끝에서 빚어진 접시들은 상처를 부드럽게 덮어 주었다. 그림은 제자리에 앉아 숨을 쉬었고 색은 언어 대신 온기를 건넸다. 재즈는 낮은 음으로 식당을 감쌌다.


치유는 한순간의 폭발이 아니다. 잔물결처럼 가늘게 퍼져 어느 틈에 단단하던 것이 누그러진다. 그 파동은 한 접시의 온기일 수도 있고, 한 줄의 문장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곡의 재즈일 수도 있다. 히구마는 ‘치유 중’인 사람들을 마주하며 썼다. 그는 알았다.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 과정에 머무르는 일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것을.


오소이의 문을 나서며 그는 그림 쪽을 한 번 더 보았다. “고마웠어.”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파도 소리와 재즈 사이에서 분명히 들렸다. 누군가는 그를 ‘완치된 작가’라 부를지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라 부를 수도 있겠다. 히구마는 그냥 계속 쓰기로 했다. 천천히, 그의 이름처럼 변함없이 꾸준히.


오소이의 마루에 앉아 그는 된장국 한 숟가락을 더 떠 넣었다. 김이 올라오는 된장국의 냄새가 목젖을 타고 내려갔고 그 뜨거움은 오래 굳어 있던 몸의 일부를 풀어 주었다. 국물은 슴슴했지만 우미우시의 손길이 스며 있었다. 다시마 우린 물, 오래 익힌 된장, 약간의 생선 육수. 그 모든 것이 사람의 일상을 붙드는 작은 힘이었다. 히구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말로 다 못할 것이 숟가락 하나에 들어 있었다.


우미우시는 작은 브루잉 포트를 꺼냈다. 분쇄한, 고흐가 좋아하던 예맨 모카 마타리 원두가 필터에 담겼다. 뜨거운 물을 천천히 돌려 붓는 그의 손놀림에는 정해진 리듬이 있었다. 물의 첫 방울이 커피 가루를 적실 때 아주 낮은 소리가 식당 안에 깔렸다. 그 소리는 파도의 속삭임과 어우러졌다. 브루잉이 끝나자 그는 잔에 천천히 커피를 따라 담았다. 향이 올라왔다. 씁쓸함과 흙냄새, 약간의 캐러멜 향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잠시 뒤 우미우시는 다른 쟁반을 가져왔다. 작은 라메킨 하나. 그 안에는 부드럽게 구워진 크림브륄레가 담겨 있었다. 표면에는 설탕 가루가 고르게 뿌려져 있었고 우미우시는 토치를 꺼내 조심스럽게 불꽃을 댔다. 설탕은 금빛 캐러멜로 변했다. 얇은 껍질이 생겼다. 그 껍질은 딱딱해 보였지만 그 아래의 커스터드는 여전히 촉촉하게 온기를 품고 있었다. 히구마는 작은 숟가락으로 크림브륄레의 표면을 살짝 쪼갰다. ‘딱’ 하는 소리가 아주 작게 났다. 깨진 캐러멜 조각이 혀끝을 스치자,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퍼졌다. 그 맛은 문득 비 오는 여름, 몽마르트르 언덕의 작은 카페에서 창밖 빗줄기를 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던 크림브륄레를 떠올리게 했다.


그 소리와 맛의 순간은 재즈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히구마는 크림브륄레를 먹고 브루잉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커피와 달콤한 캐러멜이 서로를 끌어주었다. 향이 섞이자 그는 작게 웃었다. 오래 참아온 숨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미우시는 옆에서 조용히 물을 따라주었다. “천천히 드세요.” 그는 말했고, 그 목소리는 약속처럼 들렸다. 히구마는 창밖의 바다를 한 번 바라보다가 다시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숟가락으로 남은 캐러멜을 긁어 혀끝에 올리고 커피 잔을 가볍게 들어 향을 더 들이켰다. 그때 그의 얼굴은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온화한 얼굴. 그 표정은 오래, 그의 마음에 아름다운 무늬처럼 남았다.

(재즈가 낮게, 아주 낮게 남은 음들을 늘리며 방 안을 감쌀 때)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 온화한 얼굴이 언제까지고 내 마음에 아름다운 무늬처럼 남았다.



<낸시 윌슨의 음악을 들으며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다가 후다닥 쓰게 된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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