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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by 김경애
박래현 부엉새.jpeg 박래현 <부엉새>

지난해 겨울 미술학원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부엉이 그림을 가지고 들어왔다. 부엉이 그림이 걸려있으면 집에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려왔다며 벽에다 떡허니 걸었다. 부모님 살림걱정 하는 소리에 본인이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가 보다.

부엉이가 그림을 걸어놓은 후로 살림이 더 나아졌는지는 딱히 모르겠다. 어차피 미신이니 믿는 사람마음이다. 그림보다 한 달 앞서서 내가 일을 시작한 뒤로 돈이 더 들어오는 건 맞다. 올여름부터는 아들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그것도 들어오고 있으니 돈이 들어오는 게 맞는가 보다. 박래현도 그것을 알고 그렸을까? 그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으나 전쟁전후로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네 아이를 키우며 청각장애 남편과 왕성한 작품활동까지 한 그녀 또한 그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그 청각장애 남편이 바로 <모란도>의 김기창이다. 박래현은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한 신여성이었다. 우연히 아는 언니의 가정방문을 따라가서 학생의 오빠와 필담을 나눈 첫 만남 이후로 3년간 필담연애 끝에 결혼했다. 서로 인격과 예술을 존중하고 그림을 그릴 여건을 만들 것을 약속하였다. 결혼 후 2년에 한 번씩 <부부 전>을 열고 세계 무대의 그룹전과 부부 전에 출품했으며 7년간의 미국유학까지 다녀왔다. 한국화의 현대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으며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했으나 무리하게 작업에 몰두한 탓에 간암으로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기창은 "만일 하늘이 허락해 준다면 내 목숨을 당신께 넘겨주고 싶었소"라고 했다. 얼마나 서로의 예술세계를 알아보고 존중하고 사랑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나와 남편은 23세에 만나 31세에 결혼한 후 올해로 19번째 해이다. 연애까지 도합 27년이다. 내 나이 50이니 반이상을 함께 한 셈이다. 유전자를 나눠준 자식까지 생기고 반평생을 함께 했으니 서로 의지가 될 수밖에 없다. 김기창처럼 목숨까지 주고 싶진 않을지라도 각자의 노고와 배려, 존재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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