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현_ 부엉새, 1950년대 초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가을,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수원시립미술관에서 한국 근현대미술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 전시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 오산시립미술관 《한국 근현대미술 명작전》에서 봤던 우향 박래현의 <부엉새>가 수원에 터를 잡은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부엉새>를 바라보다 처음 보았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차분한 회색조의 부엉새는 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생각하며 한참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박래현의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사람의 작품이 맞는 것일까 의심이 들 만큼 강렬한 색채의 추상적인 작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득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부엉새는 담담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으로 박래현 작품의 시작을 알리며 가장 앞자리에 있었다. 한쪽 눈을 실룩거리며 "내 뒤로 정렬!" 힘차게 외치는 부엉이는 흔들림 없이 세상을 통찰하며 이끄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부엉새>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색감으로 표현된 추상화를 연달아 보며 '박래현'이라는 예술가가 궁금해졌다.
김인혜 작가의 「살롱 드 경성」 책에서 궁금했던 박래현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었다. '찬란히 빛나던 낮의 화가, 그보다 더 영롱하던 밤의 화가'라는 꼭지 제목으로 김기창과 박래현을 만났다. 더 영롱하던 밤의 화가가 바로 우향 박래현(1920-1976)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생각해도 어른들이 정해 준 짝을 만나거나 선을 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1940년대 박래현은 당당한 신여성으로 평생 함께 하고픈 사람을 스스로 선택했다. 니혼 여자미술학교 재학 중 하숙집 주인 딸을 모델로 한 <단장, 1943>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하며 예술계에 데뷔한 그는 예술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고 서로 인격과 예술을 존중해 주길 바라는 결혼 조건을 내걸었다. 그도 나혜석을 알았을까? 1920년 파격적인 결혼 조건을 내 걸며 결혼 한 나혜석 또한 결혼 조건 내걸었고, 그 모든 조건을 수락한 ‘신남성’ 김우영과 결혼했었다. 나혜석의 결혼 조건 속에도 작품 활동(그림 그리기)을 방해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100여 년 전 우리의 신여성들도 지금 못지않게 자신의 일에 프로페셔널했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무척 사랑하며 긍지를 가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3년간의 필담 연애 끝에 1946년에 결혼한 박래현의 남편이 찬란히 빛나던 낮의 화가 운보 김기창(1913-2001)이다. 듣지 못하는 김기창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한 분이 그의 어머니 한윤명(1895-1932)이라면, 말을 못 하는 김기창에게 구화술을 익히게 해서 사람의 입 모양을 보며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만든 이가 박래현이었다. 서로의 예술을 존중한 화가 부부는 1947년부터 거의 2년에 한 번씩 《부부전》을 열었고, 1966년 결혼 20주년 기념 제11회 《부부전》까지 이어졌다. 젓가락 행진곡처럼 하나의 화폭에 부부가 함께 완성한 <봄 C>는 봄의 생명력을 온 화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열흘이라는 황금연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밤, 모두가 잠들고 고요한 이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 생각을 더듬고, 꺼내기 딱 좋은 시간이다. 박래현도 그랬을까? 세대를 거슬러 올라 여자의 삶을 떠올려보았다.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육아와 살림은 여자들의 지분이 훨씬 많다. 박래현도 오늘날의 워킹맘처럼 환한 낮에는 네 자녀 양육과 집안일, 그리고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처리하고 달빛으로 물든 밤에야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다.
1950년대 초반 그린 <부엉새>를 다시 보았다. 밤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박래현은 밤에 활동하는 부엉새에 자신의 모습을 담으며 예술을 향한 집념과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 아닌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듯하다. <이른 아침, 1956> 작품으로 《대한협회전》 대상 수상, <노점, 1956> 작품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국전쟁 후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담긴 두 작품에는 <부엉새>를 닮은 회색이 함께하여 비장하면서 강인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1960년대 외국 여행과 1969년부터 약 7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은 작품 세계도 변화시켰다. 이집트와 중국 고대 문명, 마야·아즈텍 문명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접한 박래현은 인류의 원형, 태고의 신비, 역사의 상흔, 생명의 환희 같은 주제를 자신만의 추상화로 표현했다. 황색, 적색, 흑색은 서로 번지고 스미며 커다란 화면을 채웠고, 동양화의 번짐 효과를 동판화 기법으로 옮기며 추상회화를 판화로 확장시키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창착해나가는 즐거움이 얼마나 컸을까? “죽으면 다 자는 잠, 살아서 왜 자냐”라며 부엉새처럼 밤을 지새우며 작품 활동에 몰두했던 박래현은 56세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없지만 자신을 닮은 부엉새는 남아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잠들었지만, 내 정신은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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