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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단편소설>_고흐의 밤을 해석하는 법

미술 인문학자와 문리학자의 공저 노트

by 김상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며 쓴 미술 단편 소설입니다. 음악은 수잔 발라동을 사랑했던 에릭사티의 'Je te veux'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테라스〉, 1888년, 캔버스에 유채, 81×65.5cm, 크뢸러뮐러 미술관 소장

“오늘은 여기까지요.”

혜미가 연필을 놓고 한 발 물러섰다. 모니터엔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포룸 광장, 1888년 9월의 밤. 가스등이 노랗게 번지고, 하늘은 깊은 코발트빛으로 뻗어 있었다. 자갈길은 별빛을 흘려보내듯 잔잔하게 반짝였고, 노란 차양은 밤공기 위에 따뜻한 담요를 걸어놓은 듯 가볍게 흔들렸다.


“혜미, 네가 말한 삼각형이 이거지?”

유호가 노트북을 돌렸다. 하늘 부분만 확대한 이미지와 별자리 지도가 나란히 떠 있었다. 그는 도면을 읽을 때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완벽한 일치라고는 못 해. 그래도 여름 대삼각형[1]—베가, 데네브, 알타이르—의 감은 있어. 9월 중순 프랑스 남부면 서쪽으로 기울며 보였을 테고.”

혜미가 되물었다. “물병자리도 가능하다는 말이 있잖아.”

“가능성. 별의 ‘중심’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달라져. 붓자국은 점이 아니니까.”

그 말에 혜미는 화면 속 빈 의자 하나에 눈이 갔다. 이제 막 누군가 앉으려는 자리, 혹은 끝내 오지 않는 이를 위해 비워 둔 자리. 고흐가 자주 그리던, 기다림의 설득력.


“나는 별이 정확히 뭔지보다, 이 밤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봐.” 혜미가 미소를 머금었다. “차가운 하늘과 뜨거운 가스등 사이에서 색이 딱 이 순간에 걸리잖아. 그걸 붙잡으려고 노란색을 끝까지 밀어붙였을 거야.”

유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과학자는 여백을 보면 자로 재고 싶어 져서 문제지.” 그는 농담처럼 말을 이었다. “사랑의 온도는 몇 도고, 오늘 바람은 몇 m/s였는지 따져보는 버릇.”

둘은 이 그림으로 한 챕터를 공저 중이었다. 혜미의 문장은 대체로 이랬다.

“여기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포룸 광장입니다. 화면 왼쪽 노란 차양 아래, 접시와 의자와 사람의 목소리가 켜져 있고, 머리 위로는 못처럼 박힌 별들이 있습니다. 고흐는 밤을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문장으로 번역하듯 색을 배치했습니다.”

그 옆에 유호의 주석이 붙었다.

“1888년 9월 중순, 밤 9~10 시대일 개연성이 높다. 별의 상대 간격·하늘의 기울기·건물 실루엣의 차광을 대입하면 그 구간이 가장 그럴듯하다. 다만 기억과 붓질 사이에는 오차가 존재하므로 분 단위 특정은 불가.”


밤이 깊어갈수록 둘의 목소리는 그림 속 카페로 스며들었다.

혜미가 수업하듯 말했다. “여러분, 화면을 따라 골목 끝까지 걸어가 볼까요? 어둠의 틈 사이로 하늘이 더 파랗게 보이지요. 빛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멀리 있을 때 제 온도를 드러냅니다.”

유호가 낮게 덧붙였다. “실은 그 파랑, 공기 분자가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야. 우리 눈이 그렇게 느끼도록 되어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고흐는 과학을 몰라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의 진실을 택한 거네.”

“정확히는 보이는 대로의 체감.” 유호가 고쳐 말했다. “그게 네 표현으론 더 예쁘지.”


창밖에 비가 내렸다. 식탁 위 컵에 떨어진 물방울이 동그란 파장을 만들었다. 혜미는 화면 속 노란 원들을 따라가 보았다. 차양의 고리, 접시의 테두리, 탁자 표면에 찍힌 작은 하이라이트. 고흐는 밤의 모서리마다 원을 붙여 놓았다. 깨어 있는 것들이 서로를 깨우는 모양으로.


“우리 책, 첫 문장을 정하자.” 유호가 새 문서를 열었다.

혜미가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노란 천막이 켜진 밤, 파란 하늘은 더 깊어져 별들이 말을 건다.”

“좋아.” 유호가 빠르게 타이핑했다. “각주는 이렇게. ‘어느 별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 덕분에 우리는 밤을 더 오래 바라본다.’”

“정확성은?”

“연대, 장소, 가스등 같은 사실은 단단히 적고,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남길 건 남기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쓰자.”


여기까지, 이야기엔 작은 균열이 남아 있었다. 몇 해 전, 둘은 아를로 신혼여행을 가려다 일정이 틀어졌다. 그때부터 혜미는 “언젠가”를 말했고, 유호는 “정확한 시기”를 찾았다. 빈 의자처럼 남은 말이었다.

그때 유호가 화면을 다시 키웠다. 골목 정면의 어둠 속, 희미한 등불 하나가 떨리고 있었다.

“잠깐.” 그는 좌표 격자를 얹고 별 몇 개를 찍었다. “만약 이 점을 베가로, 이걸 데네브로 가정하면… 너, 이 각도 봐.”

각도선이 골목의 빗금과 정확히 포개졌다. 별과 건물의 경계가 만드는 삼각이, 카페 천막의 가장자리와 같은 기울기로 떨어졌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유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날 밤 9시 20분 전후, 서쪽 하늘. 내가 가진 데이터로는 이 시간이 가장 예쁘게 겹쳐.”

혜미가 조용히 웃었다. “‘예쁘게’라는 단어, 네 입에서 듣기 쉽지 않은데.”

“오늘은 미학이 이겼어.” 그는 마우스를 내려놓았다.


혜미는 다시 빈 의자를 보았다. 비가 멈춘 유리창에 그 의자가 겹쳤다. 그늘진 자리, 그러나 누구든 앉으면 금세 따뜻해질 자리. 그녀가 낮게 말했다.

“유호, 우리 그 의자에 앉으러 갈래?”

그가 안경을 벗어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포룸 광장에 서서 별을 찾다가, 결국 서로를 찾았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혜미의 손엔 샤프, 유호의 손엔 마우스가 들려 있다. 서로 다른 도구인데, 오늘은 같은 일을 했다. 밤을 측정하고, 밤을 기록하는 일. 정확함이 포옹하려면, 먼저 느낌이 팔을 벌려야 한다는 것을—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었다.


출국 날짜를 정하기 전, 혜미는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얘들아, 고흐의 밤은 단순히 ‘파랗다’가 아니야. 노란빛이 있어 파랗고, 목소리가 있어 조용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시간이 흐르는 밤이야. 그러니 이 그림 앞에서는 꼭 한 번 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유호가 덧붙였다. “그리고 언젠가 아를에 가면, 9월의 어느 밤 9시쯤, 서쪽 하늘을 찾아. 베가든 데네브든 알타이르든—어느 별이든 먼저 말을 걸 거야.”


둘은 마지막 문장을 함께 완성했다.

“그가 보았다고 믿은 세계가,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세계와 만나는 자리—우리는 그 자리를 책이라 부른다.”

노란 차양 아래의 밤은 여전히 따뜻했고, 모니터 속 별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그리하여 그들의 책도, 그 밤에 작은 의자 하나를 더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이번엔, 빈 의자가 아니었다.


[1] 여름 대삼각형

북반구 여름밤에 잘 보이는 관측 패턴(이스터리즘). 세 꼭짓점은 베가(거문고자리 α), 데네브(백조자리 α), 알타이르(독수리자리 α).


베가(Vega): 거리 약 25광년. 북반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별 중 하나.

데네브(Deneb): 푸른 초거성. 거리 추정 약 1,500광년 내외(연구에 따라 1,400–2,600광년 범위).

알타이르(Altair): 거리 약 17광년. 빠른 자전(약 8시간 안팎)으로 납작한 형상.

(문화 메모) 칠석 전승에서 알타이르=견우, 베가=직녀로 연결.



에릭 사티(Eric Satie) 왈츠, 난 널 원해 ‘Je te v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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