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으쓱함을 지켜주는 한 마디
아이와 마주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던 평화로운 오후였다.
문제를 풀던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언가 대단한 발견을 했다는 듯, 아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엄마, ‘실패’가 무슨 말인지 알아?”
그 질문을 듣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던졌다.
“실패? 당연히 알지! 실 감는 거잖아~!”
...
“엄마 어떻게 알아?”
“엄마도 당연히 예전에 다 배웠지!”
그런데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가라앉는 게 보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지금 ‘실패’라는 단어를 새로 배운 게 너무 뿌듯해서 엄마한테 뽐내고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였는데..
그런데 엄마가 “나 다 알아”라고 해버리니,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뽐낼 기회를 내가 무심결에 가로채 버린 거구나... 이럴 수가...
빨리 상황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찰나의 성찰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우와, 근데 실패 이야기를 꺼내줘서 진짜 오랜만에 엄마가 그 생각을 떠올렸네? 엄마가 잊고 있던 걸 다시 기억나게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그 한마디에 아이의 어깨가 다시 으쓱 올라갔다.
아마도 엄마를 가르쳐주었다는, 엄마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엄마가 당황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휴 내 대처.. 낫베드였어...'
심리학적 해설
이 장면은 아이의 본능적인 유능감(Competence) 욕구가 자기효능감(Self-efficacy)으로 꽃 피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가 새로 배운 단어를 엄마에게 설명하려 한 것은 자신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능한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발현이었다. 이때 엄마가 “덕분에 다시 생각났다”며 한걸음 물러나 준 대처는 신의 한 수였다.
엄마에게 가르쳐준 성공 경험은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엄마의 의도적인 빈틈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유능함을 마음껏 증명해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대가 되어준 셈이다.
여운 한 문장
엄마의 빈틈은 아이가 자라는 무대가 된다.
with 냉철한 소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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