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
“그러게, 어떻게 지내? 우리는 플러싱에만 나오면 예원이 엄마 생각이 나. 오늘도 가구 사러 나왔다가 생각나서 문자 했어.”
“그래요? 그러게요. 그때 제가 첫째 임신했을 때였죠?”
“응, 그랬지, 배가 남산만 해가지고 운전하고 우릴 데리러 왔었지 하하.”
거의 오 년여 만에 예원이 엄마 목소리를 들었다. 다들 사느라 바빠 잊고 살다가 서로 추억이 있는 장소에 가면 아련한 기억을 되살린다.
예원이 엄마와는 한국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예원이 엄마는 아직 결혼 전이었고 지금의 남편과 사귀는 중이었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강남 있는 영어학원에 다녔었다. 웃음이 많고 유쾌했던 그녀와 친해져서 같이 점심도 먹고 영어 스터디 그룹도 하면서 이민 준비를 했었다. 학원 근처 모퉁이에 할머니가 하시는 백반 집에서 삼치구이를 맛있게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었는데.
그렇게 같이 공부하다가 예원이 엄마가 먼저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사 년쯤 뒤 오랜 기다림 끝에 미국 땅을 밟았다. JFK 공항을 나와 낯선 뉴욕과 처음 대면했던 날,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몸도 마음도 추웠다. 어리둥절 우리 다섯 식구는 피곤이 몰려와 라이드 나온 분의 차 속에서 내내 졸았다. 남편도 너무 졸렸는데 차마 라이드 나오신 분께 미안해서 꾹꾹 참았단다. 그렇게 창밖으로 지나가는 퀸즈에 위치한 플러싱의 회색빛 거리를 보며 자다 깨다 했다. 중간에 한국 마켓에 들러 쌀이랑 몇 가지 반찬이랑 쿠쿠밥솥을 샀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미리 지인을 통해 마련해 둔 거처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이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살림살이는 배로 한 달이 넘게 걸려 도착할 예정이었다. 첫날 공항에서 오는 길에 샀던 밥솥에 밥을 하고 상이 없어 쿠쿠밥솥이 담겨 있던 상자에 밥과 반찬을 올려놓고 먹었다. 고추장이랑 캔에 든 참치만 비벼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시차로 인해 정확히 한국의 아침시간에 맞춰 다섯 식구가 한밤 중에 함께 눈을 떴다. 그 밤중에 라면을 끓여 먹고 밥을 비벼 먹었다.
한국에서 로밍해 온 전화기로 겨우 예원이 엄마에게 연락이 닿았다.
“여보세요? 나야. “
“오! 선생님! 드디어 오셨군요, 어디세요? “
“여기 주소가,,, ”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지금 갈게요."
”지금? 알았어. 기다릴게."
배가 산만한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났는데 임신을 했구나. 여전히 하하하 웃음을 날린 그녀는 우리를 태우고 그녀가 살고 있는 플러싱으로 데려갔다. 우리 가족은 며칠간의 감옥살이 끝에 와잇스톤 다리를 건너 처음으로 나들이를 했다. 가장 급한 핸드폰부터 샀다. 그리고는 그녀의 남편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IHOP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바깥음식이 맛있었다. 한동안 외식할 일이 있으면 예원이네가 데려간 IHOP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날 달이 다 되어 크게 부푼 배를 안고 운전을 해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장도 보러 가고 밥도 먹고 그녀의 집에서 얘기도 하고 놀았다. 그녀를 만나면 춥고 낯선 뉴욕을 잠깐 잊고 한국 음식이 잔뜩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향수를 달랬다. 차를 렌트하게 된 후에도 틈만 나면 예원이네로 가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내가 취직이 되고 예원이 엄마도 아이를 출산하면서 서로 바빠지고 소원해졌다. 가끔씩 만나기도 하고 연락도 하다가 점점 뜸해져서 지난 오 년은 연락이 아예 끊어졌었다.
“미국 처음 왔을 때 너무 고마워서 남편하고 가끔씩 얘기해.”
“그래요? 얼마니 답답한지 아니까 안 갈 수가 없었어요. 저도 그런 때가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시원한 웃음소리를 잃지 않고 있는 그녀가 반갑고 고맙다.
“별일 없지?”
“네, 똑같아요."
“그래, 잘 살았다는 소리지 하하.”
“맞아요, 우리 언제 만나서 밥 먹어요.”
“그래, 그러자”
다시 만나도 안 만나도 늘 고마워할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베풀어 주었던 친절, 아마도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처음 낯 선 미국땅에 떨어져 춥고 무섭고 두려웠는데 그녀로 인해 어떻게든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게 해 주었던 일들 말이다.
"예원이 엄마,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