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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by 얄미운 하마

"저거 봐봐, 예쁘지? 코스코에서 샀어."

"또 샀어? 이제 그만 사. 집에 화분이 몇 개야 도대체."


눈을 흘기며 남편에게 핀잔을 준다. 남편은 아무 말없이 딴청이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남편은 온 집에 가득한 화분들을 두고도 예쁜 걸 보면 또 사 온다. 화초에 큰 관심이 없는 내게는 그저 쓸데없는 물건 하나를 좁은 집에 들여놓는 것이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두툼한 소포가 와 있다. 크기를 보아하니 일주일 전에 주문했던 책꾸러미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가위로 포장을 뜯는다. 여섯 권의 예쁜 책들이 나를 반긴다. 마치 앞으로 한 달 먹을 식량을 받아 놓은 사람처럼 든든하고 책 내용이 궁금해서 설렌다. 요즘 책 표지들은 어찌 그리 예쁜지.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책꽂이에 꽂는다. 뭐부터 읽을지 정하는 것이 어렵다. 우선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라는 책부터 읽기로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떠난다. 지금 읽고 있는 리베카 솔닛의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읽고 나면 하나하나 꺼내어 읽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책을 사는 거나 남편이 화초를 사는 거나 뭐가 다를까 싶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책 사는데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백 불이 넘어야 배달비를 받지 않는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백 불이 넘는 책을 척척 주문한다. 나의 마음의 양식이니 당당하다. 거기에 비하면 남편이 사 오는 화분은 저렴한 편이다. 십 불, 이십 불짜리 화분을 망설이다가 사 오는데 거기다가 부인 눈치도 보아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는 건데 부인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다. 뭐 하는 건가, 나라는 사람은.


남편의 꽃나무 사랑은 유별나다. 한국에 살 때는 혼자서 양재동 꽃시장을 돌아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아파트 베란다가 온갖 종류의 난 화분으로 가득 차서 화를 낸 적도 있다. 당시에 남편은 지방 출장이 잦아서 화분에 물 주는 건 내 차지가 되니 그럴 만도 하다. 안부 전화는 화분에 물 주라는 명령으로 끝이 난다. 건성으로 '알았어'하고는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출장이 길어지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화초들은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돌아온 남편은 혼자서 중얼거리며 물을 주고 화분의 흙을 갈아 주고 하며 자신의 분신들을 살려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맨날 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꽃나무한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좀 예뻐해 줘 봐."


미국에 오고 나서는 사느라 바빠 잠시 잊고 지냈지만 여전히 꽃집을 그냥 지나치치 못한다. 그런 남편이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내가 책을 사면 나의 취미생활이고, 남편이 화분을 사면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거다. 책 보따리가 배달되어 올 때마다 남편도 한 마디씩 하고 싶지 않을까. 한 번도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은 없다. 너무도 당당한 나에게 뭐라 해봤자 기분만 상할 걸 아는 거겠지.


남편은 코스코에서 사 온 난 화분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며 기분이 좋다. 관심이 없는 나는 집안 곳곳에 똑같아 보이는 난 화분을 또 샀나 하는 생각에 싫은 소리를 하고 만다. 한 마디하고는 아차 싶다. 아까 배달되어 온 책 꾸러미가 생각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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