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서투른 타이핑 솜씨로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하루 종일 앞 뜰에서 땅을 고르고 잔디씨를 뿌리느라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다. 도와주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일하느라, 내일은 일하는 날이니 오늘 하루가 내게 허락된 소중한 시간이다. 주말에는 지인들과 1박 2일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오늘이 이번 주에 유일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날인 것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어 놓고 뜰에서 땀 흘리고 있는 남편은 모른 체하기로 하고 책상 앞을 지키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가 일 년이 되어 간다. 처음엔 큰 기대 없이 시작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가입하고 글을 하나씩 올렸는데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해 브런치에서 쫓겨나는 것 아닐까 걱정도 했다. 꼭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지 않아도 꾸준히 노트에 손글씨로 뭔가를 적고 있다. 그렇게 쓴 글이 담긴 노트가 여러 권이 되었다. 일하다가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펜을 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를 켜고 떠오르는 생각을 워드에 적는 것이다. 가족들은 이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내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남편은 내가 글을 쓴 후로 싸울 시간이 없어졌다고 좋아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내 안에 재료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글을 써 내려가다가 막히는 일이 많았고, 어떤 생각이나 상황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딱 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냥 아무 말이나 적어 넣었다. 그동안 내 안이 텅 비어 있었구나. 몰랐다. 비어 있는 공간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제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Input이 있어야 output이 있지 않겠는가.
어릴 적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소녀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책에서 멀어져 갔다. 나이가 들수록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 베스트셀러들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소설은 더더욱 안 읽혔다. 내 인생이 더 소설 같은데 뭘, 건방진 소리를 했다. 신앙생활을 하고부터는 신앙서적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상한 생각으로 일반 책들을 멀리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육십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글을 쓰고부터는 책을 그냥 읽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좋은 문장들을 필사하는 것이다. 필사한 글 밑에 나의 글을 덧붙인다. 그 글이 왜 나에게 다가왔는지, 나의 생각과 경험들, 감정들을 적어 넣었다. 참 신기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한 문단 쓰기가 어려웠는데 일 년이 되어 가는 지금 잘 쓰든 못쓰든 A4 용지 몇 장을 술술 써 내려간다. 내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의 책들은 필사할 문장이 많다. 나와 결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읽다가 멈추는 때가 많다. 옮겨 적느라.
얼마 전 나는 마음이 어려운 일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글 속에다 퍼붓는다. 서너 장이 다 되도록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계속 써 내려갔다. 어느 순간 나의 화가 풀렸음을 알리는 문장을 쓰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답답한데 상대방은 오죽할까."
아! 화가 사라졌구나 싶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상대에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취미로 글을 쓰는 게 아니었구나. 살기 위해 글을 쓰는 거였구나. 쓰기 싫을 때도 있었는데 이런 순간들이 나를 계속 쓰게 한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해가 지도록 이러고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누가 보면 대단한 작가 한 사람 나신 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