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는 거지?
어제는 일하다가 화가 났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다 미워지고 짜증이 났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일이 버거워 쓰러질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지러웠다.
중환자실에서 지속성 투석기를 설치하다 말고 핸드폰을 커냈다. 매니저에게 문자를 썼다.
"I am not feeling well. I won't be able to come in tomorrow."
"okay."
내일 못 나온다는 문자에 매니저는 짧게 오케이라고 답한다. 울컥하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참았다. 아이처럼 울지 말자. 다 큰 어른이 일이 힘들다고 우는 건 좀 모양 빠지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are you okay?' 한마디만 하면 쥐약이다. 아마도 바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우자고 달려들었다. 감사하다. 연민의 눈빛으로 '많이 힘들지'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선 도움이 안 된다. 어차피 너도나도 힘들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투석환자들도 아픈 계절이 따로 있는지 이상하게 가을이 오면 환자가 많아졌다. 환자가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스텝이 부족한 게 문제다. 날마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환자들을 커버해야 하다 보니 다들 지쳐갔다. 새로운 환자 명단을 가지고 다가오는 레지던트들을 향해 날카롭게 레이저를 쏜다. 그들은 무슨 죄랴. 환자가 아파서 병원에 오는 건데.
이렇게 바쁠 때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들을 더 한다. 제니는 유난히 질문이 많고 느린 간호사인데 어제는 더 심했다. 환자 차트를 조금만 뒤져 보면 나올 것들을 끝없이 물었다.
"Please check the patient's chart."
이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다. 제니뿐만이 아니라 다른 간호사들도 수많은 자잘한 질문들을 한다. 본인들은 한 사람이지만 차지를 보는 나는 여러 간호사들에게서 수없이 받는 질문이다. 최대한 답을 해 주려고 하지만 지친다.
왜 스스로 찾아보지 않는 거지? 조금만 찾아보면 답이 있는데. 오후가 되면서 화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말이 예쁘게 안 나온다. 못되게 말하지 못하는 내 성격 탓도 해본다. 확 쏘아붙이면 그렇게 쉽게 물어보지 못할 텐데.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 될 일도 차지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껄끄러운 부탁들이 많으니 피해 가고 싶은 것이다. 평간호사로 일할 때는 세상 성격 좋아 보였던 사람들이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차지가 되어 보니 그저 열심히 일해 주는 사람이 최고다.
런치룸에서 수다 잘 떨고 상냥하던 제니는 막상 차지가 되어 바라보니 시간관리가 안되고 일을 한없이 느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일이 기다리고 있든 말든 하세월이다. 수도 없이 물어보는 것도 모자라 은근히 골도 잘 내고 삐지기도 잘한다.
"Grace, when are we going for a walk?"
같은 동네 사는 제니와 한 번 점심을 먹고 걸은 적이 있다. 언제 그런 시간을 낼 거냐 묻는데 또 화가 치밀었다. 일하는 곳에서 이렇게 속을 썩이는데 밖에서 시시덕거리며 만나고 싶겠냐. 속으로만 씩씩대었다.
늘 유쾌하던 레니는 막상 일에 관심이 없고 핸드폰으로 주식 들여다보는데만 온 정신을 쏟았다. 경력은 나보다 오래되었는데 간단한 일도 혼자서 해결을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볼 때면 어린아이가 따로 없다.
어제저녁 9시, 유난히 피곤에 절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서 남편과 딸들에게 말했다. 사람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과 내 안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돌아오니 머리가 터질 같았다. 한국말도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가 영어는 말해 뭐 하겠나. 억울하고, 속상하고, 답답하고의 연속이다.
일을 안 나가기로 했으니 느지막이 일어나 폰을 보다가 어느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일하는가."
일본 작가가 쓴 책인데 오늘따라 그 질문이 나에게 콱 박혔다. 나는 왜 일을 할까. 이렇게 화를 내며 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아니, 일을 하면서 왜 화가 날까. 물론 바쁘고 스텝이 부족하니 힘들다. 그러나 울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지 싶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일을 하지 않았었다. 이 년 정도 간호사로 일하다가 미련 없이 그만두고 결혼을 했다. 그 후로 이십여 년동안 잠깐 가게를 열어본 것 외에 대부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보냈다. 그렇다고 현모양처는 아니었다. 긴 결혼 생활 중 반은 싸우며, 갈등하며 요란하게 보냈다.
미국에 이민을 온 후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시작했다. 내 나라에서도 하지 않던 일을 미국에서 하게 된 것이다. 영어가 서툴고 문화도 잘 모르는 사람이 미국의 직장에서 살아남기란 힘겨운 싸움이었다. 몇 번에 걸친 눈물 바람이 있었고, 숨겨 놓은 보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호기롭게 때려치우기도 했다. 물론 밤잠을 설치며 다음 일을 찾으려 발버둥을 치곤 했지만. 여전히 일을 취미생활하듯 생각하던 나는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적응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왜 억울했을까. 말을 못 해서. 아니다.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하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마존 정글 속에서 날마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고, 마치 자선사업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명분이 있어야 했고, 위사람은 존경할 만해야 존경했다.
조직의 생리를 전혀 보르는 사람이 그 안에서 겪는 일들은 다 이상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하며 일을 해야 되지? 억만금이라도 쌓아 놓고 재미로 일을 하러 오는 사람 같았다. 고상하고 호기로웠다. 꿀리지 않았다. 상사에게도 할 말을 다했다. 그만둘 거니까.
치사하고 더럽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는 다음 직장을 찾느라 잠을 또 설치며 더 치사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다른 이들처럼 정글 속의 야수가 되어갔다. 쥐어뜯고 싸웠다. 여전히 강도가 약하다. 그래서 뒤쳐졌다. 순간순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만 두면 그만인데. 이 나이에 나가서 뭐 하지. 집값이랑 날아오는 빌은 어떻게 내지.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오늘 하루 느긋하게 쉬고 다시 일하러 가야지. 수많은 제니와 레니가 있는 곳으로, 또 소리치고, 흘겨보고 얄미워하러 가야지. 너무 똑똑해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질투도 하러 간다. 일찍 가야 한다는 매니저의 말에 '말도 안 돼, 이 난리 통속에 일찍 간다고?' 생각하지만 나오는 말은 'okay, good night.'이다. 미소도 함께 덤으로 날린다. 모르겠다. 왜 일하는 가에 대한 답을 하기엔 아직 어리다. 적어도 직장생활만큼은 더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