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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필사 노트 - 1

멀고도 가까운

by 얄미운 하마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 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그건 글쓰기를 통해 공유되는 고독이 아닐까.” - 멀고도 가까운, by 리베카 솔닛




얼마 전 아는 지인이 글을 쓰고 싶다는 내게 물었다.


"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냥 일기도 아니고 굳이 독자가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순간 나는 머뭇거렸다.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왜?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좋아서, 쓰고 싶어서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없다. 굳이 다른 이들을 설득해야 할까. 일기 쓰는 게 아니고, 독자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책상 한 귀퉁이에 '왜 쓰는가'라고 적은 메모지를 붙여 놓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중에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책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발견했다. 이 말이 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말주변이 없다.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을 어떻게 밖으로 내놓을지 잊어버린 사람 같다.


말이 목구멍에서 막히는 느낌은 중학교 때부터 심해졌다. 시골에서 국민학교를 마치고 아버지 직장을 따라 여수로 이사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이 나셨다. 당시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자리가 없다고 해서 검정고시를 봐야 헸다. 난생처음 가본 검정고시 학원은 몹시 낯설었다.


한 달도 못되어 그만두고 여수로 다시 내려가 아는 분의 소개로 하숙을 하게 되었다. 여수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생판 모르는 부잣집 딸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가난한 우리 집과는 달리 커다란 집에 각자 방도 따로 있고, 마루도 부엌도 넓고, 작은 정원도 달린 언덕 위의 예쁜 집이었다.


처음으로 주눅이 들었다. 나랑 다르게 해맑은 동갑쟁이 딸내미는 공주 같았다. 아버지 하고도 친해 보였다. 술로 세월을 보내셨던 우리 아버지와 비교되었다. 그 애의 엄마는 딸이 공부를 못한다고 나와 비교를 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공부를 곧잘 했던 나의 성적표를 마음대로 뜯어보고는 딸을 닦달했다. 눈치가 보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마구 커졌다.


일 년을 언덕 위의 예쁜 집에서 웅크리고 살다가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은 또 다른 세계였다. 얼굴이 하얀 아이들이 깍쟁이 같은 서울말을 쓰며 다가왔다. 어떻게 그 아이들을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시골에서도, 여수에서도 친구들과 조잘조잘 잘 떠들었던 내가 완전히 벙어리가 되었다. 반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를 몰라서 맨 뒤에 앉아 끝날 시간만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도망 나와 집으로 숨었다.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지냈다. 가끔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다가왔지만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기회를 놓쳤다.




그때부터였을까. 말문이 자주 막혔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했다. 심지어 대학 때는 선배들이 말하는 것 좀 들어보자며 놀렸다. 그래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서바이벌만 할 정도의 말을 하고 살았다. 머릿속에 말들이 차올랐지만 밖으로 내뱉는 법을 잊어버렸다.


"너는 애가 재미가 하나도 없냐."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웃기만 했다. 머릿속이 고장 난 사람 같았다. 대학 생활 내내 우중충한 곤색 잠바를 입고 동전이라도 찾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다니는 애가 나였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 찬란한 대학 시절, 그렇게 보냈다.


그 후로도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말을 해야 했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하는 말들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은 잘 듣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부담스러워 못 들은 척한 게 아닐까. 나의 절절함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말을 하지 않는 쪽으로 선택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없던 일처럼 입을 닫았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한두 번씩 미친 사람처럼 쏟아내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딴 사람이 되어 난장판을 만들고 직장을 때려치웠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오랫동안 내 속에 묵혀 있던 말의 파워가 무서울 정도로 폭발했다. 꾹 눌러 놓았던 감정들을 그때그때 말로 풀지 못하니 엄청 난 굉음을 내며 떠져 나왔던 것이다.


외로웠다. 평생 외로움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글쓰기를 하면서 오히려 외로움과 친구가 되었다. 외로우니 쓸 수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니 근사하게 들린다.




얼마 전 딸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했다. 때때마다 말문이 막혀 간헐적으로 벙어리가 되는 여자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그 여자의 영혼에서 나오는 말이 말풍선으로 적나라하게 써지는 그런 조금은 기이한 줄거리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한 말들을 쏟아부을 수 있다면 속이 시원할 것이다.


사실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바람은 지금의 나에겐 뜬 구름 같은 이야기이다. 소설 작법도 모르고 글을 쓴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버벅거리는 나에게는 먼 꿈이다. 누가 아는가. 몇 년쯤 지나 말이 막힌 여자의 이야기를 정말로 쓰게 될지. 다른 이들과 고독으로 연대를 이루는 목적이 달성될 그날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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