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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사람이고 싶다

by 얄미운 하마

감기 기운에 하루 종일 멍하다.


아침에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딸들과 함께 트레일을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로 결정 한 뒤로는 아무리 힘들어도 잠깐이라도 걷는다. 날씨가 쌀쌀해서 땀이 안 나겠지 했는데, 한 시간 정도 걷고 나니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것 외에 한적한 트레일 걷기였다. 나 혼자 걸었다면 조금 더 갔을지도 모르겠다. 딸들과 같이 걷다 보니 그만 걷자는 말에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음번에는 두 시간 이상 걸어봐야겠다.


감기로 지친데다가 한 시간이 넘게 걸었더니 배가 고팠다. 집 근처에 있는 DD’s diner로 갔다.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어 clam chowder를 시켰는데 내가 원한 creamy 한 수프가 아니었다. 빨간 국물이 나와서 혹시 잘못 나왔나 하고 웨이터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 하는 표정이다.


이건 맨해튼식 clam chowder 란다. 먹어 보니 맑은 국물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마치 뜨끈한 우동국물 먹듯이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딸들이 시킨 음식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걷고 나니 식욕이 돋았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는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뭐라도 읽을까 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잠을 자면서도 머릿속에는 어제 일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요즘 인력이 부족해서 많이 힘들다. 환자가 늘어나는 시기와 맞물려 모두가 힘들다. 밤번인 Kim이 수술 때문에 한국에 가 있어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매니저에 대한 원망이 올라온다. 한 사람이 두 달씩 빠지면 뻔히 힘들어질 것을 알았을 텐데, 이 상황을 만든 게 매니저인 것 같아 밉다. Charge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고생 중이다. 내일 다시 charge로 일을 해야 하는데 출근하기가 무섭다.


나는 자책하는 버릇이 있다. 사실 인력이 부족때문에 누구라도 힘든 상황인데, 내가 더 잘했더라면, 더 스마트했더라면, 더 빠릿빠릿했더라면, 자책을 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자책감이 참 싫다.


멋진 사람이고 싶은데,


당당한 사람이고 싶은데,


요동치지 않는 고요한 사람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워하는 약한 인간이 나다. ㅠㅠ 이모티콘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쓴다. 그게 내 모습이다.


그러다가 내가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의 어느 작가가 쓴 필사 노트를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이 부러워 보였다면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당신에겐 타인의 삶의 이면까지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는 것.”


<시소 인생> 강주원


내 인생이 별 볼일 없어질 때면 다른 사람들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 때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과 잘 지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없이 화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할 때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평정심을 유지할까 한다. 위의 시구처럼 내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내일도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 일을 하러 가야지.


마지못해하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목적을 가지고 나의 힘을 믿으며 일터로 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믿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자. 지금까지의 인생이 나에게 준 믿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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