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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갈비찜

by 얄미운 하마

큰 딸과 함께 wholefood market으로 장을 보러 갔다. 오랜만에 등갈비찜을 해보자고 했다. 이곳에서 파는 고기가 좀 더 질이 좋아서 자주 오는데 등갈비는 매번 있는 게 아니어서 있어야 하는데 하며 들어갔다. 마침 등갈비가 여러 개 있었다. 반가웠다. 채소들 몇 개 더 사서 집으로 돌아와서 딸에게 등갈비 포장을 푸는 일부 터 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찬물에 담가서 한동안 핏물을 빼고 월계수 잎과 통후추를 넣고 끓였다. 사실 나도 요리에는 소질이 없어 인터넷 사이트에서 간단한 것들을 따라서 하는 정도이다. 그렇게 만든 요리도 맛있다고 해주니 식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큰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예비사위가 결혼 후에 무엇이 가장 걱정되냐는 질문에 우리 딸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한참 웃었다. 그 후로 시간이 되는 대로 한 가지씩 함께 만들어 보고 있다. 도낀개낀이긴 하지만 몇십 년 요리를 했으니 조금 낫다 하고 된장국이며 콩나물국이며 오늘처럼 등갈비찜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딸은 서툰 칼질로 썰어보고 간도 보고 한다. 집안일에는 생전 관심도 없더니 결혼을 하긴 할 모양인지 따라서한다.


“엄마 아빠가 푸시하지 않으니 오히려 결혼이 하고 싶어졌어. 처음엔 빨리 하라고 하더니 한 동안 왜 아무 말 안 했어?”

딸이 물었다.


사실 나는 사위 될 청년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결혼하자고 하는 그쪽 부모님의 바람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좋은 사람 나타났을 때 얼른 가야지, 기다릴 이유가 뭐야? 하며 기회만 있으면 딸에게 결혼하라고 했다. 딸은 대답을 정확히 하지 않았다. 심지어 프러포즈를 받은 날 울고 들어왔다. 왜 울었냐고 했더니 이제 정말 가야 하는 건가 하고 현실로 다가와서 눈물이 났단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딸이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마음이 있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예비사위도 한동안 별말이 없어서 소강상태인가 보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상대 쪽 부모님께서 다시 한번 가울에 결혼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셨다고 했다. 한국에 사시는 예비 사위 부모님께서 가을에 미국 빙문 예정이시니 그때 식을 올리면 좋겠다고 하신 것이다.


마국에 사는 우리가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사돈을 맺으려 하니 어려운 점들이 있다. 물론 예비사위는 미국에서 십 년이 넘게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는 청년이지만 가족들은 모두 한국에서 사신다. 만난 지 몇 달 지났을 때 결혼 얘기가 나오면서 줌으로 상견례룰 했다 하하. 한 시간이 넘게 화상으로 이런저런 얘기룰 나누고 끝났다. 그때도 가을에 본인들이 미국 방문할 때 결혼식을 하면 어떠냐고 물어봤었다. 남편과 나는 두 젊은이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말했었다. 오늘 딸이 아무도 푸시하지 않으니 오히려 결혼이 하고 싶어 졌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기뻤다. 나는 딸이 불안해하면서 결혼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딸의 입에서 불안한 마음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으니 기다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딸과 예비 사위는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업자와 집을 보러 다니고 있다. 결혼하겠다고 이것저것 하는 것이 귀여워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딸을 떠나보내야 한다. 삼십 년이 넘게 함께 살았던 우리 큰 딸, 미국에 오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지금은 간호사기 되어 의젓하게 일을 해낸다. 둘째와 셋째는 큰언니가 결혼해서 나가면 누가 방을 차지할 것인지 의논하기 바쁘다. 속으로는 많이 허전할 것이다. 이제 딸은 손님이 되어 내 집을 방문하겠지?


등갈비찜이 완성되어 맛을 보며 괜찮게 되었다고 만족해한다. 사실 딸이 한 거라곤 등갈비 자르고 씻고 한 것 밖에 없지만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내게는 소중하다. 이렇게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니 최대한 즐기자 한다. 서른이 넘은 딸이 여전히 예쁘다. 떠난다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귀하다. 나를 보낼 때 울 엄마 마음도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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