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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ge nurse의 하루 2

by 얄미운 하마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이 깼다. Charge로 일하는 날은 긴장이 되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깬다. 다섯 시 이십 분에 집을 출발해서 십오 분 정도 걸려 병원에 도착했다. 오분 정도 차를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밤 번 간호사 마리아가 인계를 주고 charge role을 건넨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기를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첫번째 해야 할 일은 오늘 투석받을 환자들을 체크하는 것이다. 밤새 입원실이 바뀌진 않았는지, 오늘 다른 검사 일정이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가끔 밤사이에 입원실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확인하지 않은 채로 테크니션에게 전달하게 되면 낭패다. 테크니션은 potable 투석기계를 환자 방에 연결해 주고 line prime까지 해주는 일을 한다. Potable 투석기계는 덩치도 크고 무겁다. 입원실이 바뀌어 다시 옮겨야 되면 힘이 배로 들기 때문에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다른 검사들과 겹치지 않게 스케줄을 짜는 일도 charge의 책임이다.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다 보니 온갖 검사들이 줄을 서있다. CT scan, MRI, 초음파 등등, 그리고 각종 수술 일정들을 챙겨야 한다.


환자들의 피검사 결과를 보면서 급하게 투석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며 nurse assignment을 작성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은 cardiac monitor를 달고 있어 유닛으로 내려올 수 있는지 담당 의사, 간호사와 소통을 해야 한다.


유닛에 있는 일곱 개의 투석기계들을 켜고 린스를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일 잘하는 테크니션 라빈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환자들이 유닛으로 내려올 수 있으면 좋지만 level 1 trauma 병원이다 보니 위중한 환자들이 많다. 환자들이 모니터를 달고 있으면 투석간호사들이 입원실로 가서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를 옮겨주고 연결해 주는 라빈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다. 원래 두 명의 테크니션이 있는데 한 명이 장기 휴가를 내고 나오지 않는 상태라 라빈 혼자서 1인 2역을 하고 있다.


Assignment paper 가 끝날 때쯤 낮번 간호사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Good morning, "하면서 눈은 assignment에 가 있다. 간호사들마다 선호하는 일이 다르다. 움직이지 않고 유닛에서 일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공정한 로테이션이 중요하다. 일이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charge 들은 assign이라도 원하는 대로 해주려고 노력한다.


보통 여섯 명에서 일곱 명의 간호사가 낮에 일한다. 모두 일곱 시에 출근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은 떠들썩하다. 인사로 시작해서 물어볼 것도 많고,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들, 주고받아야 할 정보들을 얘기하느라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목소리가 걸걸하고 불평이 많은 나탈리아, 맨날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매번 출근한다. 누가 듣지 않아도 한없이 떠드는 모닉, 투석실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 손자 손녀 보는 날과 겹치지 않으면 스텝이 없는 날은 나와서 도와주는 착한 할머니 간호사다. "I support you 100 percent."을 외치며 나를 웃게 해주는 워렌, 툴툴대면서도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또 두 명의 한국간호사가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한국말로 속을 털어낼 수 있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서너 명의 젊은 필리핀 간호사들이 있다. 투석실에 젊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이다.


시끌벅적하던 간호사들이 한 명씩 맡은 곳으로 흩어져 가고 나면 유닛으로 환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환자들을 위한 아침식사를 주문한다. 세 시간여 정도의 투석이 조용하게 마무리되며 아침시간이 지나간다. 물론 매번 조용한 것은 아니다. 환자들의 성향과 상태에 따라 힘든 시간도 있고 가끔은 큰 소리가 나기도 하며 심각하면 경비를 부르기도 한다. Nephrologist들이 왔다 갔다 하며 회진을 돌고, 나는 오후에 스케줄 되어 있는 환자들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담당 간호사들에게 리포트하고, 환자가 속해 있는 팀 의사들과의 연락이 다시 반복된다. 중간중간 계속해서 문자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24/7 투석을 하는 중환자실 환자들이 있어서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거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처럼 스텝이 부족한 경우는 charge 들의 고충이 크다. 일 할 사람은 적고 환자는 많은 것이다. 머리를 짜고 짜서 최대한 간호사들을 힘들지 않게 assign 하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큰 소리를 내며 항의하는 간호사들도 있다. 간호사들의 고충과 불만을 듣는 것도 임무 중 하나인 것 같다. 영어로는 venting이라고 하던가. 딱히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풀리는 것이다.


오후 일정까지 마치고 나면 한숨 돌리게 된다. 밤 번 간호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하루가 지나갔구나'를 알 수 있다. 밤 번 마리아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꼬치꼬치 따지고 묻고 웬만하면 밤에 할 일을 줄이기 위해 애를 쓴다.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얄밉기도 하다. 마리아와의 한판 씨름이 끝나고 나면 눈치를 보아가며 나지막이 묻는다.


"Can I give you a charge role?"

"Of course, good night."


만세! 끝났다.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로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오후 일곱 시까지 일하던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숨을 쉰다. 생각해 보니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갑자기 배가 고파서 그제야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일단 끝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피곤도 함께 따라온다. 얼른 집에 가자 하며 병원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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