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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ge nurse의 하루 3

by 얄미운 하마

오늘도 알람 소리가 나기도 전에 일어났다. charge로 일하는 날은 어김없이 잠을 설친다. 이 스트레스가 언제쯤 줄어들까. 마구 일을 망치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다섯 시 반쯤 도착해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밤에 일했던 간호사가 들어왔다. 마리아와 번갈아서 일하는 한국인 간호사다. 얼굴만 봐도 밤새 바빴구나를 알 수 있다. 초췌한 모습으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오면,

'Ooops, 힘들었구나, '

힘든 사람 잘못 건드렸다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일이 많았나 봐요 하며 어서 집에 가서 쉬라고 등을 떠민다. 웃으며 인사하고 나가는 뒷모습이 안쓰럽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밤 번을 맡아 일을 하려니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그래도 보통은 씩씩하다. 이 나이에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신다.


밤에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간호사들 중에는 밤에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름 좋은 점도 있다. 조용하게, 방해 없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선택이다.


테크니션 라빈이 출근하고 조금 있으면 토요일에만 일하는 유닛 secretary, 마타가 들어온다. 주중에 일하는 젊은 지넷과는 다르게 구수하게 장단도 잘 맞춰 주고, 일도 일아서 척척, 음악까지 틀어가며 분위기를 뛰운다. 토요일에 일하는 건 이런 재미지. 아바의 옛날 노래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면 갑자기 잠깐의 댄스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십오 년쯤 되니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낮 번 간호사들이 출근해서 한바탕 도떼기시장을 만들고 나면 정말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환자가 너무 많아 일단 주말 온콜 담당 nephrologist에게 문자를 날린다. 환자는 많고 간호사 숫자는 적으니 적당히 알아서 해 달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밀려드는 환자들을 온콜 레지던트가 어찌하겠냐마는 그래도 일단 엄포를 놓는다. 가끔 효과가 있기도 하니까.


점심때에 맞춰 중국음식을 오더 했다. 요즘 환자가 많아 기계 옮기느라 고생하는 테크니션과 주말에 일하러 나온 간호사들에게 한턱 쏘았다.

"Thank you for your chinese food, it was so good."

뺀질이 몰리가 점심을 먹고 들어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일은 느리고 휴식시간은 길게 갖는 얄미운 사람,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 미워할 수도 없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sick call'을 날려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 나도 저렇게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가 있었는데 싶으니 그냥 또 넘어가진다.


오늘 도와주러 나온 워렌이 자기 생일에 올 거냐고 묻는다. 언제냐고 물으니 일요일이라고, 우리 파트 사람들만 초대할 거라고, 냉장고 앞에 A4용지를 붙여놓고 참석할 사람들을 적어 놓는다. 못 말리는 오지랖이다. 내일은 목걸이 사러 가야 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줄 거냐고 했더니 자기 생일선물이란다. 어이가 없어서 다 같이 한바탕 웃는다.


내가 왜 이곳에서 일하고 싶을까를 생각해 보면 구십 프로 이상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다. 웃고 떠들다 보면 힘든 시간도 덜 힘들게 지나간다. 흉내를 잘 내는 테크니션 라빈 때문에 배꼽 빠지도록 웃는 적도 많다. 간호사들마다 별명을 붙여서 잔뜩 흉을 보기도 한다. 라빈은 온 병원 사람들이 다 친구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하고 근황을 묻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언제 다들 사귄 거야?!


어느새 시간이 흘러 퇴근할 때가 되었다. 다시 밤에 출근한 Kim과 잠깐 수다를 떨었다. 집에서 끓여 온 배춧국과 퀴노아밥, 그리고 장조림으로 저녁식사를 거하게 한다. 역시 한국음식이지, 먹어야 힘이 나고 밤새 일하지.


남편에게서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아쉽게도 즐거운 수다를 멈춘다.

"밤새 수고하세요."

"응, 그래, 수고했어."

한국말로 주고받는 인사가 정겹다. 물론 라빈과 마타에게도 굿 나잇 인사로 마무리한다.


"수고 많았어, 고생했지?"

"응, 힘들었어."

남편을 보자 갑자기 하루종일 쌓였던 피곤이 몰려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You did a good job,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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