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통한 숙제 같은 글쓰기
최근에 브런치에 조인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작가 신청을 하지 않은 채로 글을 써서 저장만 해 놓았다. 용기가 나지 않아 숨어서 예행연습을 해 본 것이다. 내 글을 내놓기 부끄러운 것도 있지만 매번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나를 망설이게 했다. 일도 해야 하고, 가족도 돌봐야 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도 있고, 글쓰기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Congratulations, mom.”
막내가 축하해 주었다.
“별거 아니야.”
“ 아니야, 엄마는 정말 대단해. 이렇게 도전하잖아.”
“구랭? 정말?”
갑자기 아기가 되어 딸에게 어리광을 피웠다.
어릴 적 나는 글짓기를 좋아했다. 좋아했다기보다는 잘하면 칭찬받으니 신났던 것 같다. 글짓기나 독후감 대회를 나가면 무슨 상이든 타왔다. 그때부터 나는 막연히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년 전에 해묵은 일기장 서너 권을 다시 꺼내 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를 거쳐 첫 직장생활까지 이어진 일기였다. 부끄러운 내용이 대부분이라 다시 읽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결국은 얼마 전에 삼십 년도 넘게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오래된 일기장을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글쎄, 지금은 그때의 마음을 잊어버렸다. 분명 이유가 있았을 텐데. 이런 얘기를 하면 지인들은 그 소중한 것을 왜 버렸냐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일기 쓰는 걸 그만두었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쯤 지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가끔 힘들 때면 펜을 들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던 것도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글짓기 상 하나 안 타본 사람이 있나 싶기도 하고.
몇 년 전에 셋째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출판사를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필요할지도 모르니 얼른 글 쓰라고. 그때 갑자기 그래, 글 써야지, 써야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또 몇 년이 지나갔다. 마치 숙제를 해야 하는데 안 해서 똥줄 타는 학생처럼 안절부절이었다.
“나 글쓰기 시작할 거야, 하고 싶어.”
“그래, 해 봐. 잘할 거야.”
남편에게 선포하듯이 나의 포부를 밝혔다. 사실 자신이 없었지만 일단 선포를 해야 시작할 것 같아서였다. 내기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은 지금은 없다.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글쓰기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도 주문했다. 그리고는 무작정 글을 써서 브런치 서랍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문단 쓰는 것도 어려웠다. 글감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글이 길어지고 평범한 일상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동료와의 대화도 남편과의 다툼도, 딸들과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다 글감이 되었다. 다른 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한두 마디로 끝날 얘기가 길어졌다. 궁금해서 자꾸 질문하게 되어서이다. 그것이 글이 되었다. 어떨 때는 글감이 생각났는데 잊어버릴까 봐 제목을 적고 간단하게 요약을 해 놓기도 했다. 웬만한 작가 못지않다, 하하.
사람들에게 아직 내 글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글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솔직하게 못 쓸 것 같아서이다. 일단 많이 쓰고 브런치에 올리고 하다 보면 언젠가 글밍 아웃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살면서 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당당히 말하고 실천하는 첫발을 내디뎠다. 잘 쓰고 못쓰고는 나중에 생각하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그런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를 열어 두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