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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by 얄미운 하마

"Do you have children?"

"Yes, I do."

"How many?"

"Three daughters. What about you?"

"I have a son and a daughter."

세시간여의 투석이 끝나고 마무리하는 중에 환자가 말을 걸어왔다.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환자였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분이 얘기도 나누고 간간히 이불도 올려 주고 하면서 환자 곁을 지켰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 환자라서 혈압등 상태를 기록하고 책을 보면서 세 시간을 보냈다. 불안정한 환자들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 봐야 하지만 별 문제가 없는 환자들은 옆에서 십오 분마다 상태기록하고 알람이 울리면 고치고 하면서 조용히 치료가 끝난다.


약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을 걸어 꽤 긴 대화를 했다. 그의 아내가 이십 년 전에 신장이식을 해주었다고 했다. 신장을 받고 이십여 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최근 일 년 반전부터 다시 투석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십 년 동안 아내의 신장이 버텨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I was a meddle school teacher and she was a secretary in the same school"

"Did you like her first?

"Of course"

"How long you two be together?"

"Almost fifty years now"

"Wow, amazing"

"I love her more than I first met her."

그에게 네 아내는 너를 만나서 행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아니라고 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한다. 모든 부부가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한 부부가 사십 년, 오십 년을 함께 했다고 하면 존경심부터 생긴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남편하고 많이 싸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We've been through, of course, we've been there."

아! 그렇구나. 그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함께 있구나. 지금은 젊었을 때보다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의 아내를 돌아보았다. 살짝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두 사람의 진한 역사를 엿보는 느낌이었다. 마무리를 끝내고 'good night'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모르겠다. 나는 그리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아내의 얘기도 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환자와 간호사로 대면하다가 아까처럼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누면 더 이상 환자가 아니고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혹은 아들, 내게는 더 이상 아파서 누워있는 환자만은 아니게 되는 거다.


끝나고 휴게실에서 테크니션으로 일하고 있는 D를 만났다. 그녀도 긴 하루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었다. 조금 전에 할아버지 환자가 내게 물었던 질문을 했다.

"Do you have children?"

"Yes, three, teenagers."

마침 이스라엘 전쟁에 대한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와서 궁금해졌다. 다니아나의 고향, 가나에는 전쟁이 있냐고 물었다. 이십 년이 넘게 전쟁은 없었다고 한다. 언제 가나를 떠났나고 했더니 이십이 년 되었단다. 그녀의 남편이 먼저 미국에 왔고 그녀는 가나에서 칠 년이 넘게 그를 기다렸다고, 칠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기다렸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남편이 그녀를 데리러 가나로 왔고 결혼식을 미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We went to the same school and the same church."

"Oh, you two are high school sweetheart?"

"Yes, we do."

우리는 둘이서 하하하 웃었다. 어려서부터 같은 학교, 같은 교회를 다녔고 서로 사랑하고 오랜 기다림을 거쳐 이곳 미국에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열심히 살고 있다.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Amazing!"


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부란 뭘까, 진짜 사랑이란 뭐지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속의 세 쌍의 부부가 떠올랐다. 사랑은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성장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정체되면 비극적인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듯하다. 젊은 장교와 불꽃같은 사랑을 했던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그 사랑에 매달려 있다가 스스로 기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이 비극은 꼭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 듯하다.


남편과 나는 오랜 다툼으로 힘든 시간을 거쳐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중이다. 만약 남편이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방향으로 갔겠지, 우리 부부는 뒤늦게 성장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작은 것 하나부터 배워나가며 부부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쉽지 않다. 아마도 부부 사용 설명서를 만들어 가는 중에 미완성인 채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그래도 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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