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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쓰게 하는 것들

by 얄미운 하마

은유 작가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다가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떠냐는 대목을 읽고 컴퓨터를 켰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와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은 좀 다른 것 같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를 쓰는 세계로 이끌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무언가 설명하고 싶었다. 어떤 행동을 하고 나면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를 설명하고 싶었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잣말로라도 중얼거렸다. 내 앞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말을 중얼거리다가 남편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신나게 혼잣말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남편이 밖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화장실을 마구 두드리면서 무슨 일이 있냐고 소리쳤다. 나도 놀랬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로 말했다고?


화장실을 나와서 혼자서 말하기 연습했다고 대충 둘러댔다. 남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오랜 시간 같이 살았던 부인이 갑자기 낯설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말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그저 글로 바꾼 것뿐이었다. 말로만 하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글로 적어 놓는 것이었다. 처음엔 메모나 to-do list를 작성했다. 날마다 아침에 다이어리를 펴고 그날 할 일이나 생각나는 문장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보면 적어 놓았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길어졌다. 그리고는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남편과 다투고 나면 마구 써 내려갔다. 남편을 글 속에서 마구 헐뜯어 주었다. 때로는 왜 다투게 되었는지 복기를 하는 의미로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면 신기하게 들끓었던 마음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다시 읽어보기도 무색하게 글 속은 난장판이다. 그 속애서 나는 평온을 되찾았다.


일터에서의 에피소드들도 적었다. 좋은 일들, 나쁜 일들, 감동적인 것들 등등 많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일하다 보니 각기 다른 경험, 생각, 의견들이 흥미롭다 너무나 울분을 토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글에다 쏟아낸다. 적당 하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한참을 끙끙대기도 한다. 미움이 하나 가득 차오를 때 복수심이 올라올 때 글에다 토로하고 나면 미움도 복수심도 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글을 쓰게 하는 것들, 나를 설명하고픈 마음이 동기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보는 중이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의 답이 조금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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