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한가닥 했던 미딸이

그때의 용기가, 너에게도 스며들기를

by 미딸

어른으로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본다면, 말 그대로 좀 까진 애였을지도 모른다. 색색깔로 머리를 염색하고, 아이돌 춤이랑 노래를 거울 앞에서 하루 종일 따라 하던 아이. 심지어 내가 직접 팀을 꾸리고, 그 시절 ‘세이클럽’에 내 팬클럽을 셀프로 만들어 운영까지 했으니 말이다. 기획사에 보낼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며, 엄마 화장품을 바르고 마트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 와 셀프로 촬영하던 꿈많은 초딩이었다.

방과 후엔 팀원들과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각자 파트 연습도 하고, 합도 맞췄다. 그렇게 공들여 연습한 노래와 춤이 완벽했는데 문제는… 관객이 없었다. 그래서 초딩 중에서도 최고참급인 6학년 소녀 셋은 결국 직접 무대를 찾아 나섰다. 버스킹이라는 말도 없던 시절. 우리는 동네 역사 앞에 가서 음악을 틀고 노래하고 춤을 췄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걸 했지?” 싶은 12살의 패기. 그런데 공연 중에 노숙자로 보이던 아저씨가 다가오자 순식간에 쫄아버렸다. 그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동전 몇 개를 손에 쥐여주고 갔다. 그게 공연비였는지 적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내 인생 첫 공연 수익(!) 이었다.

아이돌을 향한 꿈은 그 해 겨울,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서 쓴맛을 보며 생각보다 담담하게 끝났다. 아마 장기자랑에, 무대공연, (셀프)팬클럽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덕에 미련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흥’자체를 아예 끊진 못했다.

중학생이 되자, 엄마는 공부보다는 운동이 낫다며 3년 내내 댄스학원을 보내줬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일이지만, 20년 전에는 정말 거의 없던 일이었다. 덕분에 중학교 장기자랑은 늘 내 차지였다. 초등학교에서 단 7명만이 배정받은 낯선 중학교에서 수줍음 많던 내가 그렇게 무대 중앙에 서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전교회장 선거에 덜컥 나가 당선이 되었다. 그 시절 전교회장이라 하면 공부 잘하고 모범적인 아이들이 가는 코스였는데 나는 유행하던 ‘샤키컷’은 반드시 해야되고 축제마다 댄스팀을 꼭 꾸리던 애였으니, 조금은 어색한 조합이었다. 심지어 타 중학교 선생님이던 친구엄마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 “전교회장이 공부하러 다녀야지, 춤춘다고 학원을 빼먹는 게 말이 되니?” 라며 나무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엄마도 그 엄마지만, 나 또한 사람들에게는 좀 낯선 전교회장의 모습이었나 보다. 그렇다고 내 눈 하나 꿈쩍이진 않았지만.

지금,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로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 같은 아이’가 우리 딸 주변에 있다면 솔직히 조금은 경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나는 다시는 못할 소중한 경험을 했고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하는 에너지의 뿌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우리 딸이 미리 겁먹지 않고, 하고 싶은 건 해보고, 후회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그 뜨거움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든, 그것 자체가 살아 있는 힘이 되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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