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거면 됐다.

by 미딸

나는 대체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스스로를 날카로운 샤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5살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처음 친해진 동기들은 “미딸이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려서 아마 네가 우리 중에 친한 사람이 제일 많을 거야~”라고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올라오는 대답을 목구멍으로 삼키곤 했다. “아니에요~ 저는 두루두루 어울리긴 해도 마음의 선이 확실해서, 그 선을 넘기긴 쉽지 않아요.”


지나고 보면 나의 인생은 늘 새로운 환경과 함께였다.

중학교 입학 때도 그랬다. 학구열이 꽤 높은 학교로 배정받았는데 400명 가까운 입학생 중 단 7명만이 우리 초등학교, 즉 우리 동네 출신이었다.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떠난 도시에서도 한국인은 단 2명이었고, 그중 하나가 나였다. 대학교 졸업 후 첫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무난하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편이지만, 샤프심 같은 뾰족함과 예민함은 늘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참 친하게 지냈던 친구 넷이 있었다. 모두 다른 반이었지만 우연히 친해진 것을 계기로 3년 내내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각자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점 ‘다름’이 드러났다. 두루두루 무난하게 지내던 나는 조금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성격 탓에 큰 문제없이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진짜 잘 지낸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 본심은 숨기고 끄덕이기만 하며 보낸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닐 것이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늘 편을 갈라 싸우고, 누군가는 모임에서 퇴출되고, 절교하는 일도 있었다. 그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 결혼하고 타지에 살던 나는 여느 때처럼 친구들을 만나러 친정이 있는 고향으로 갔다. 날씨도 흐렸고, 약속 시간에 아무도 제때 오지 않았다. 늦게 와서도 별말 없는 친구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을 수도 있다. 날씨 탓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 친구들과 정말 이별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기억도 흐릿하다.

어쨌든 그날 만나자마자 속으로 늘 삼키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단순히 그날의 불만을 말한 건지, 아니면 저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말들이 터져 나온 건지 나도 모르겠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고교 3년 내내 죽고 못 살던 ‘오총사’가 ‘사총사’가 되고, 이제는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진 말이 되었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흘렀다.

다행이다. 아니,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함께 쌓았던 잊지 못할 추억이 한가득이지만, 앓고 앓던 고름이 터지고, 딱지가 앉고, 떨어지고, 단단하게 아물었다.

나는 조금은 더 ‘사람관계’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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