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세계, 부부유니버스

by 미딸

온 우주가 ‘나’로 돌아가는 여자와 온 우주가 ‘너’로 돌아가는 남자가 만났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우주에서 아이들이 중요한 별이 되고 새로운 우주가 되자, 여자는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면서 털어놨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한때 ‘너’(여자)로 가득했던 그의 우주에 아이들이 추가되면서 그의 우주는 ‘너’와 ‘아이들’로 가득 찼다. 그에게 그 자신으로 가득 찬 우주는 첨부터 없었다고.


딸 둘에 막내딸로 자랐던 나는 집안의 모든 ‘처음’은 언니에게 미루면서 자유롭게 자랐다. 두 살 터울인 언니가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자정을 넘겨 귀가했을 때, 엄마는 따귀를 올려쳤다. 내가 왜 갑자기 언니의 따귀 에피소드를 꺼내냐 하면, 정확히 2년 뒤에 나의 귀가시간은 새벽이 일쑤였지만, 엄마는 언니 덕분에 이미 면역이 생겨 “잘 다녀왔어” 훈방조치를 끝냈다. 이렇게 집안의 ‘처음’을 담당하던 언니가 닦아놓은 그 길을 얌체처럼 편히 누리던, 쉬운 길을 가던 딸이 바로 나였다.

신랑은 위로 누나가 둘,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이다. 포지션으로 보나 시대적으로 보나 나보다는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님의 교육관으로 성별 차별 없이 엄격히 자랐다. 삼 남매의 막내로, 성격이 다른 누나들 틈에서 나름 삶의 방식을 스스로 깨치며,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란 아이였다.

대학교에서도 내가 토익이며 인턴이며 부지런히 다닐 때, 신랑은 맥주캔을 사이에 놓고, 친구와 삶이 무엇인지, 저리 바삐 가는 사람들은 왜 바쁜 것이며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를 의논하며 여러 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에 관심이 많았던 신랑과 보여주길 좋아하는 내가 만났다. 내가 깃을 뽐내는 수컷공작과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 신랑은 그런 꽁지깃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말하고, 혹 상한 데나 빠진 데는 없는지 살펴봐 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가 믿는 나의 우주는, 그가 펼쳐놓은 더 큰 우주 안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랑이 나를 이렇게 잘 봐주고 알아주는데, 나는 과연 그만큼 그를 알고 있을까?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신랑은 나에게 미지의 우주 같다. 연애 6년, 결혼 8년, 도합 14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예상 못 한 모습들이 불쑥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고, 설레게 한다. 아마 그래서 부부라는 관계는, 알면 알수록 더 호기심이 생기고, 탄성이 터지는 우주 같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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