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은 냄새로, 어떤 기억은 공기로

by 미딸

어떤 기억은 냄새로, 어떤 기억은 공기로 남는다. 어떤 기억을 불러오는 냄새나 온도가 있다. 내게는 청명하지만 조금 쌀쌀한 날씨가 그렇다.

대학교 3학년 무렵, 스펙 좋은 언니들이 다녀온다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우리 학교는 주로 유럽 학교들과 연합을 맺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던 스위스를 가고 싶었다. 1 지망부터 10 지망까지 주욱 채워냈지만, 결국 어느 나라로 갈지는 내 손이 아닌, 인터뷰를 평가하는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얼마 후, 국제지원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원하던 스위스로 결정됐다. 그 당시 나는 막연히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그곳이 어떤 나라인지, 무엇이 유명한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책을 뒤지고 검색을 해봐도, 출국 전까지 스위스는 여전히 물음표의 나라였다.

카타르를 경유해 하루 만에 도착한 스위스는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마중 나온 친구 덕분에 첫날부터 스위스 아우토반을 달렸고, 앞으로의 생활도 이렇게 매끄럽게 흘러갈 거라 기대하게 만들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하늘, 차 안의 공기가 또렷이 기억나는 건, 그날의 두려움과 설렘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라벤더 향이 섞인 진한 섬유유연제 향기를 맡을 때도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린다.

내가 살던 곳은 5층짜리 플랫이었다. 2층쯤 되는 작은 방, 네 개 방 중 가장 작았지만 현관문이 따로 있어 나름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교환학생들뿐 아니라 여러 가족도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지하 1층 세탁실에서 빨래를 하려던 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세탁소집 딸이었지만 세탁기를 한 번도 돌려본 적이 없었던 나는 세탁기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때,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내려와 웃으며 자신의 세제와 유연제를 넣어주고 세탁기를 돌려줬다. 그때 맡은 향기가 바로 짙은 라벤더 향이었다.

찰나였지만, 그 향기는 내 세탁물에, 그리고 내 기억에 진하게 남았다.

지금도 조금 쌀쌀한 듯 청명한 날씨일 때면, 나는 창문을 열고 그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곤 한다. 십여 년이 흐른 때이지만 눈을 감고 그 공기를 머금고 있자면, 잠시나마 그때의 기억이 난다. 잠시라도 20대 초반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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