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뭘 해도 다 용서된다’는, 그 둘째가 접니다.

by 미딸

‘둘째는 뭘 해도 다 용서된다’는, 그 둘째가 접니다.

나를 낳은 김미숙 여사는 칠 남매의 맏딸이다. ‘큰딸은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살아온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가 섬유회사, 여행사에서 일하며 20대를 보냈고, 그 시절에 독신주의를 선언한 듯 꽤 자유롭게 살았던 분이다.

그 자유로움 속에서도 외갓집에 생활비를 꼬박꼬박 부쳤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살림 밑천 맏딸’의 전형이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휴가를 받아 고향에 내려갔는데, 외할머니와 가족들의 전략(!)으로 엄마도 모르게 맞선을 보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결혼에서 태어난 둘째가 바로 나였다.

엄마는 첫째를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낳았다. 그래서일까, 언니는 말 그대로 선물 같은 존재였다. 지금 집에 있는 앨범도 돌 사진, 백일 사진, 모두 언니 뿐이다. 그런 걸 보면 그 시절의 감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언니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나는, 모든 징후가 아들이었다고 한다. 고기가 자꾸 먹고 싶었고, 태동이 유난히 힘찼다. 심지어 태몽도 고추 밭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이번엔 아들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달지 않고(!) 세상에 나왔고, 엄마는 병원에서 사흘 내내 울었다고 한다.

아빠는 하늘을 보며 “허허허허…” 웃기만 했다고. 실망을 감추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기대와 실망 속에 태어난 둘째가 바로 나다.

딸 둘 중 둘째딸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둘째는 뭘 해도 다 용서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두 살 터울, 정확히는 17개월 차이인 언니와 나는 성격부터 천지 차이였다.

일례로 엄마아빠가 소리 높여 말다툼을 하는 날이면, 나는 언니 등뒤에 숨어서 “언니이~~~~” 하면, 언니는 나를 자기 몸 뒤로 보내고는 엄마며 아빠에게 큰소리로 중재하곤 했다.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언니랑 함께 잤던 나는 잠이 안오는 날이면 10대든 20대든 항상 자고 있는 언니를 깨워 나에게 토닥토닥을 시켰더랬다.

엄마의 유년시절을 보는 것과 같던 듬직한 첫째가 언니라면, 나는 뭐랄까… 언제나 실수는 어물쩍 넘어갔고, 어렸을 적 부터 갖가지 춤을 섭렵하면서 집안의 마스코트 같은 역할을 해내던 둘째였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엄마가 우리 집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돌봐준 적이 있다.

결혼 후 타지역에 살다 보니 급한 일이나 스케줄이 겹칠 때면 자연스레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와 계신 주간에는 어김없이 기분이 업 되고, 내내 들뜬 상태로 지낸다.


요즘 케이팝 데몬헌터스(일명 ‘케데헌’)에 푹 빠진 첫째가 외할머니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한마디 했다.

“느희 엄마도 어렸을 때 손가락에 마이크 꽂고 이정현 노래 얼마나 잘 불렀는데~~”

손녀의 재롱을 보며 그 시절 막내딸의 모습이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된 내가, 엄마 눈에는 여전히 그냥 ‘막내딸’인가 보다.

요즘 주변에서 하나만 낳고 둘째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첫째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고.

그 사랑인 둘째로 삼십 여년을 살아온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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