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그릇을 키웁니다."

by 미딸

문득 생활 속에서 책임의 그릇과 내 능력의 그릇을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결혼하기 전의 나는 ‘역할의 그릇’이 작았다. 딸의 역할, 유독 따랐던 이모에게 조카의 역할, 그리고 친구 모임에서 총무의 역할 정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그릇 안에 담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결혼한 딸, 그리고 두 아이들의 엄마의 역할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름들이 내 작디작은 ‘역할의 그릇’에 차곡차곡 얹혔다.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낼 수 없으니, 나는 때때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어떤 역할들은 과감히 포기했다.

이를테면 ‘조카의 역할’ 같은.


칠 남매의 맏이인 엄마와 다섯째인 이모는 열 살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비슷한 또래를 키워서 인지 유독 자주 어울렸다. 평일에도 서로의 전화 한 통이면 그 시절에 택시를 타고 날아가서 밤늦도록 술 한잔 기울이기도 했고 휴가철마다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언니는 이모에게 늘 살뜰한 사랑을 받았고, 우리가 성인이 된 뒤에는 밤늦도록 술 한잔 기울이는 상대가 되기도 했다. 교환학생 시절에도, 엄마를 대신해서 이것저것 챙겨준 사람도 이모였다. 그 고마움은 크지만, 동시에 부담도 컸다.

엄마는 늘 “너희는 이모에게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고, 나도 맘은 굴뚝같았지만 들을수록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엄마도 ‘언니’라는 역할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느낀 무게를 우리에게 흘려보낸 건 아닐까.


결혼 후, 나는 ‘조카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살가운 며느리’, ‘타지에 살지만 자주 찾는 딸’의 역할을 택했다. 신랑과 나, 둘 다 집안의 막내로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부모님께 자주 가고 살갑게 지내자는 무언의 동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무언의 동의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불현듯 부담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의 무게가 갑자기 큰 바위처럼 느껴지는 순간.


나는 마냥 선한 사람도, 늘 감정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아니다. 역할을 다하면서도 맘속으로는 무게를 저울질하고, 때로는 감정에 휘둘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능력의 그릇은 겨우 종지그릇인데, 엄마와 며느리, 딸, 아내의 이름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몰려올 때면 좋은 글을 읽고, 내 마음속 이야기를 일기장에 적어 본다.

지난 시절의 나도 이런 고민을 했던가. 혹은,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뿌듯해한 적이 있었던가.

나와의 깊은 대화를 끝내고 나면, 마치 그릇을 새롭게 빚는 기분이 든다.


내 역할의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하다면, 천천히 손으로 꾹꾹 눌러 늘려가자.

시간은 꽤 걸리고 때로는 그릇이 얇아질 수도 있겠지만, 얇아지면 흙을 좀 더 붙이면 되니깐.


내 마음의 역할그릇이 간장 종지에서 찬종지가 될 때까지, 나는 오늘도 묵묵히 빚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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