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무게만큼만 빠지고, 옷장엔 임부복만 남았을 때
첫째 아이 낳기 전, 나는 꽤 순진한 기대를 했다.
"모유수유하면 살이 저절로 빠진대. 애기 낳고 나면 몸무게 쏙 빠지고, 원래 입던 옷 입고 백화점 거울 앞에서 ‘애 엄마 맞아요~?’ 이런 얘기 들을 수 있겠지?"
…아니었다. 병원에서 나올 땐 가방보다 배가 더 커 보였고, 체중은 애기 무게만큼만 딱 빠져 있었다. 그리곤 그 상태에서 묘하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입던 옷이 하나도 안 맞는다는 사실. 그날, 서랍을 열고 원래 입던 바지를 입어봤다가 단추 앞에서 깊은 한숨만 내쉬고, 결국 임부복 바지를 다시 꺼냈다. 그렇게 나는 출산 후 6개월 동안 ‘출산 전’도 아니고, ‘출산 직후’도 아닌 그 어정쩡하고 불편한 몸으로, 임부복을 입은 채 엄마로 살았다.
둘째는 전공의 2년차 때 낳았다. 복직까지 주어진 시간은 딱 8주. 딱, 56일 만에 나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복귀 첫날 밤, 응급실 당직이 잡혀 있었다. 몸은 안 준비됐다고 말했지만, 병원은 못 들은 척했고 나는 의사 가운을 다시 입고 응급실로 나섰다. 그날 밤, 나는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온몸 관절이 다 ‘삐그덕’거렸고 응급실과 당직실 사이 몇 번만 오갔는데도 무릎, 발목, 엉덩이까지 다 욱신거렸다. 추운 것도 아닌데 관절이 시리고, 쉬려고 누우면 더 아프고, 결국 나는 그날 당직실에는 못 들어가고 응급실 한 구석 의자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머리’가 안 돌아간다는 거였다. 한밤중 응급환자가 들어오고 상황은 급박한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럴 땐 뭘 먼저 해야 했지?’
‘오더는 어떻게 내지?’
옆에서 간호사가
“선생님, 오더 주세요!”
라고 말하는데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하게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입을 뗐지만 나오는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당직실 대신 응급실 화장실에서 울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닌가 봐.’
‘엄마가 된다는 건 이렇게 나를 놓치는 걸까.’
그리고 전공의가 끝난 뒤, 나는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원래는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교수님도 내게 펠로우 자리를 권하며 박사 과정을 밟아보라고 응원해주셨다. 하지만 이미 두 아이를 도우미 손에 맡긴 채 몇 년을 보냈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린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졌다. 결국 나는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택했다. 전업주부가 되어서 그동안 아이들에게 가졌던 죄책감을 마치 속죄하듯이 살림에만 매달렸고, 그러다 막내까지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 셋을 키우는 삶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진료하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나는 매일같이 기저귀와 젖병, 어린이집 알림장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거울 속에는 젊고 당당한 의사의 모습은 없고,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급격히 늙고 뚱뚱해진 엄마만 서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진 내 모습을 자주 마주해야 했다.
엄마의 몸이 힘든 건 단순히 피로해서가 아니다. 온몸이, 온 인생이 한 번 리셋되기 때문이다. 호르몬, 근육, 관절, 뇌까지 완전히 다시 짜여 지는 시간. 그걸 사회는 너무 빨리 "복귀하세요!"라고 말해버린다. 이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생각한다.
‘왜 우리는 이런 얘기를 더 자주 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걸 배우지 못했을까?’
의사인 나조차, 내 몸이 이렇게 아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지금 임신 중인 누군가에게, 산후 3개월을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출산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몸이 낯선 당신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엄마의 몸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맞아요. 그러니까, 좀 더 기다려주세요. 당신 자신을."
그리고 처음에는 너무 사소한 것부터였다. 아이들이 낮잠 잘 때 커피 한 잔을 제대로 앉아서 마시는 것. 임부복 대신, 억지로라도 청바지를 꺼내 입어보는 것. 또 하루는 아이들 셋을 모두 유모차에 태워서 집 앞 헬스장에 상담 받으러 갔다가, 계단만 올라갔다가 그대로 돌아온 적도 있다. (운동은커녕 땀만 흘리고 끝났지만, 그날 나는 스스로를 꽤 대견해했다.) 그렇게 작은 시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시 만들어지고 있구나.”
엄마가 되면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나를, 사실은 조금씩 새롭게 발견하고 있었던 거다. 여전히 몸은 전쟁터 같고, 얼굴은 후덕해졌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을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