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은 아기한테 줬는데, 왜 내 뱃살은 그대로죠?

내 몸이 ‘출산 전’으로 돌아갈 거란 기대, 이제 그만 놓아도 돼요.

by 김보민

출산 후 내 몸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랬다.

이건 분명히... 쌍둥이였던 거 아닐까?”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병원에서 정확히 한 명만 낳았는데 왜 나는 여전히 6~7개월차 임산부처럼 배가 나와 있었을까. 병실 침대에 누워 배를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혹시... 아직도 애가 안 나온 건가?”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 기대한다. 모유수유하면 살이 쭉쭉 빠진다더라, 젖만 먹여도 하루에 500칼로리는 빠진다더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원래 몸매로 돌아간다고. 그런데 그거, 내 얘기는 아니더라.


나는 모유를 ‘기적처럼’ 먹이는 대신 밤마다 배고픔에 잠에서 깨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냉장고 문을 열며 “뭐라도 씹어야 살아 있겠지…”를 외쳤다. 그리고 현실은, 애는 젖을 빨고, 나는 살을 찌우고 있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한껏 부은 배, 늘어진 피부, 둘째 출산 후엔 배가 접혀서 그 사이에 땀이 찼다. 샤워 후에 수건으로 ‘배 사이’를 닦는 순간, 나는 거울을 피했다.

“이게 진짜 내 몸이야?”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다른 엄마들은 다 날씬하던데, 왜 나만 이래?”


하지만 내과의사로서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단지 ‘살이 쪘다’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출산 후 여성의 몸은

① 지방의 재분포

② 호르몬 변화

③ 골반과 복부 근육의 구조적 손상

등을 겪는다.

한마디로 말해, 몸이 ‘완전히 재설계’된 상태인 거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서 “애 낳기전 아가씨때로, 원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기준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한다. 그 기준은... 너무 잔인하다. 그 시기에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너는 의사니까, 다 알지 않아?”

“몸 관리 잘하겠네~”

사실은 그랬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해내는 것은 다르다. 그날그날 먹는 것도 겨우고 잠은 부족하고, 운동은커녕 샤워할 시간도 없는데 내과 교과서 어디에도

“이럴 땐 이렇게 몸을 돌보세요” 같은 해답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야”

라고 스스로 되뇌며 찐살을 흘리듯 하루를 견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마음의 회복’이 먼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뱃살은 금방 안 빠지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작은 계기 하나로도 금세 달라졌다. 아이들 낮잠 잘 때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아... 오늘도 내가 버텼구나”

하고 안도할 때, 거울 앞에서 일부러

“그래, 뱃살은 있지만 나쁘지 않아. 그래도 살아 있잖아”

라고 중얼거릴 때, 내 안에서 무너진 마음이 조금씩 다시 일어섰다.


언젠가 아이가 내 배를 통통 치면서 “엄마, 아기 또 있어?”라고 물었을 때, 예전 같으면 상처받아서 울었을 거다.(돼지라는 말이 내 발작 버튼이었던 시절엔...) 그런데 그날은 피식 웃으며 “아니, 이건 네 동생 키운 자리야. 네 첫 집이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 배를 ‘망가진 흔적’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을 살려낸 자리’라고 새롭게 보게 된 순간, 마음이 먼저 가벼워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전히 배가 말랑하고, 한때 입었던 청바지는 아직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몸은 실패한 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거라는 걸.

출산 후 남겨진 뱃살이 말해주는 건 ‘자기 관리 실패’가 아니라 ‘당신은 아이를 세상에 내놓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잘 견디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나 자신에게 친절해져도 괜찮다.


『“아기는 젖을 빨고, 나는 살을 찌우고 있었다.”

“출산 후의 몸은 실패한 게 아니라, 살아남은 거예요.”

“아는 것과 해내는 것은 다르다 — 의사도 엄마다.”

“이건 뱃살이 아니라, 내가 견딘 시간의 기록이에요.”

“마음이 먼저 회복될 때, 몸도 언젠가는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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