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환자도 돌보는 나는... 대체 누가 나를 돌봐줄까요?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돌보는 사람들의 수는 정말 많다.
진료실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 명씩 속이 쓰리다, 숨이 가쁘다, 살이 안 빠진다, 갱년기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검진 시즌에는 어깨에 물이 차도록 내시경을 하고, 팔이 빠지도록 초음파를 한다.
그러다 퇴근해 집에 오면 또 다른 돌봄이 기다린다. 초등학생 아이의 준비물을 챙기고, 중학생 아이는 늦게까지 안 자는 걸 걱정하고, 고등학생 아이는 질풍노도의 예민함으로 하루가 뒤집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걱정 리스트’의 맨 끝에, 늘 빠져 있는 존재가 하나 있다.
‘나 자신.’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출산 후 복직하고 처음 몇 년간은 정말 ‘내 몸’이라는 감각이 희미했다. 누군가 나를 쓰다듬고, 챙기고, “이제 좀 쉬세요”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 공허함은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입원 환자가 갑자기 위급해져 중환자실로 이실하고, 오더 정리하고, 보호자 기다려 설명까지 마친 뒤 겨우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아이들은 어질러놓은 숙제와 마구 벗어놓은 옷가지들 사이에서 졸고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나들이 다녀온 도시락통을 씻고 있었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화장도 지우지 않은 채 번들거리는 이마, 눈 밑에는 다크 서클 대신 깊은 그늘. 팔에 힘이 빠져 수세미조차 제대로 쥘 수 없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나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기계 부품처럼 살고 있구나.”
육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고집이 셌다. 어린이집 적응도 어려워서 아이가 잘 적응 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결국 공동육아를 택했고, 다른 엄마, 아빠들과 품을 나누면서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자연에서 뛰어 놀게 하고 사교육을 지양하는 공동육아 방식은 대치동, 목동으로 일부러 이사 가서 학원입시 전쟁을 치루는 내 친구들에게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육아 방식이었다. 심지어는 학원을 안 보낸다고 하니 애를 방치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었다. 하지만 이때 선택을 난 다시 돌아가도 후회하진 않는다. 그나마 공동육아로 별나디 별나고 예민한 우리 첫째를 키워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 예민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알겠지만, 잠도 잘 안 자서 늘 재우는 게 전쟁이었다.
기억난다. 전공의 3년 차 시절, 주말에 하루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다음 날 새벽에 출근해야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아이가 자정까지 울며 버티는 거다. 결국 유모차에 태우고 “조금만 걸으면 자겠지” 싶어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한 정거장 지하철역을 걸어도 안 자더니, 편의점 앞에서 과자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 문제는... 지갑을 안 들고 나온 것. 울음소리에 동네가 떠나갈 지경인데, 그때 편의점에 있던 젊은 총각이 대신 계산을 해줬다.
“애 키우시느라 힘드시죠? 고생 많으세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너무 고마웠고, 동시에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새벽 2시, 떼쓰며 우는 내 아이가 순간 작은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결국 한숨도 못 자고 출근했던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육아는 예쁘다가도 미워지고, 사랑스럽다가도 원망스럽다. 심지어는 “얘가 일부러 날 엿먹이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진짜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는 거였다.
의대 시절 배웠던 문장이 떠오른다.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
나는 시험을 위해 외웠고, 의사가 됐다. 그러나 엄마가 된 후에는 단 한 번도 내게 적용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돌볼 수 없다. 의사로서 내가 무너지면 환자도 볼 수 없고, 엄마로서 내가 무너지면 아이들도 흔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 꼭 무너지기 직전에야 그걸 깨닫는다.
그래서 조금씩 바꿔보기 시작했다. 퇴근 후 병원 앞에서 5분이라도 걸으며 음악을 듣는다. 식탁 옆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완벽한 엄마’는 못 되더라도 ‘지금 웃고 있는 엄마’가 되려 한다.
하루 10분이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 그 10분이 쌓여서 다시 1시간, 1일, 1주일을 살아낼 힘이 된다.
혹시 지금도 나처럼 모든 걸 돌보느라 자기 자신을 맨 마지막에 두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당신이 쓰러지면, 그 누구도 온전히 행복해지지 않아요. 가끔은 남편보다, 아이보다, 환자보다 그 누구보다 ‘나’를 먼저 챙겨도 괜찮아요. 오히려 그게, 다 같이 오래 가는 길이에요.”
『“엄마이자 의사로 산다는 건, 매일 남을 먼저 돌보는 일이었다.”
“육아는 때로 아이보다 내 자신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기계부품처럼 살고 있었다.”
“하루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은 나만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웃고 있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완벽하진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