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한 식사, 간편식과 군것질… 엄마들의 진짜 식단
야간 진료를 하는 날에는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9시. 아이들은 다행히 이모님의 도움으로 저녁을 먹었지만 정작 나는 뭐 하나 제대로 입에 넣지 못한 날이 많았다. 배가 고프다기보다 뭔가 씹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 남긴 반찬을 한두 젓가락 집어먹고 부엌 구석 서랍에 숨겨둔 과자를 뜯어 먹는다. 스트레스 받은 날은 맥주도 한 캔씩 하면서 그렇게 하루의 식사를 마무리한다.
엄마들의 식단이란 게 그렇다. “먹어야 하니까” 먹는 게 아니라, “안 먹으면 안 되니까” 대충 때우는 거. 그러다 보면
▪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고
▪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또 커피와 빵으로 때우고
▪ 저녁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맥주로 끝낸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내가 오늘 제대로 먹은 게 뭐였지?”
하는 자책과 함께 눕는다. 특히 당 떨어질 때마다 찾게 되는 가공식품, 단 음식, 밀가루 음식.
그건 단순한 식욕이 아니었다. 지친 뇌가 “지금 뭐라도 줘!” 하는 절규였다. 그래서 그런 식사를 반복할수록 몸은 더 지치고, 기분은 더 가라앉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울 속 얼굴이 낯설어진다.
“왜 이렇게 부은 것 같지?”
“얼굴이 텅 비어 보이네...”
“나 진짜 괜찮은 걸까?”
그런 내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건 거창한 식단표가 아니라 ‘나도 밥을 제대로 먹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공감할거다. 아이들과 가족들 챙기다보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조리할 시간이 없고, 게다가 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요리하는 것 자체가 귀찮고 지치는 일이기도 하고 그 시간에 누워서 그냥 쉬고 싶으니, 간단하게 빨리 삼킬 수 있는 음식만 찾게 된다. 그러니 신선한 채소나 단백질보다는 입에 달고 간편한 빵, 면, 가공식품이 늘 앞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식이섬유가 부족하면 장내 유익균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대신 당분과 가공식품을 좋아하는 나쁜 세균들이 득세한다. 이렇게 세균총의 균형이 깨지면 장벽이 약해지고, 염증 반응이 만성적으로 올라가면서 인슐린 저항성도 쉽게 생긴다.1) 실제로 장내 세균총의 다양성이 줄어들수록 비만이나 당뇨같은 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2) 결국 똑같이 먹어도 지방이 더 잘 쌓이는 몸, 쉽게 붓고 피곤한 몸이 된다.
또, 빵이나 단 음식처럼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음식을 자주 먹다 보면 혈당이 급상승했다가 곤두박질치는 ‘롤러코스터’ 또는 '혈당 스파이크'현상이 반복된다. 이때 우리 몸은 저혈당을 막으려고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코르티솔은 인슐린의 작용을 방해하고 지방 축적을 촉진하는데, 실제 연구에서도 혈중 코르티솔 수치가 높을수록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3) 그 결과 체중은 늘지만, 더 지치고, 더 예민해지고, 또 다시 단 게 당기는 악순환에 빠진다.
칼로리는 충분히 섭취했는데도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같은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다 보니 세포는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피곤하고, 집중도 떨어지고, 심지어 우울감까지 쉽게 찾아온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뇌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재료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울하다. “나는 제대로 먹은 게 없는데 왜 살은 찌는 걸까?” 사실 그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몸의 생리학적 반응 때문이다. 불규칙한 식사와 가공식품 위주의 끼니가 체중, 에너지, 감정까지 흔들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고 해서 늘 ‘희생적인 식단’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먹는 걸 미루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미루는 것과 같다. 밥 한 숟갈 먼저 챙기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나도 밥을 제대로 먹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작은 인식이 시작이 된다. 그 한 숟갈의 단백질, 그 몇 젓가락의 채소가, 장내 환경을 바꾸고, 호르몬의 균형을 회복시키며, 내 피로와 우울을 줄여준다.
엄마의 식사는 늘 아이들 다음 순서였고, 환자에게는 “골고루 드세요.” “식사 거르지 마세요.” 늘 말하지만, 정작 나는 그걸 제일 안 지키고 있었다. 이제라도 내 말부터 내가 지키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밥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치료제에요.”
나는 그리고 당신은 의사이기 전에 엄마이고, 엄마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니까.
『“엄마의 식사는 늘 아이들 다음 순서죠.”
“단 음식을 찾는 건 식욕이 아니라, 지친 뇌의 비명일 수도 있어요.”
“내가 먹는 걸 미뤄두는 건, 나를 미뤄두는 것과 같았어요.”
“밥을 먹는 게 죄책감이 아니라, 권리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각주
1) Saad M.J.A. et al. Linking Gut Microbiota and Inflammation to Obesity. Front Immunol. 2016;7:161.
2) Crudele M.I. et al. Gut microbiota in the pathogenesis and therapeutic potential of metabolic disease. EClinicalMedicine. 2023;57:101857.
3) Kamba A. et al. Association between Higher Serum Cortisol Levels and Decreased Insulin Secretion in a General Population. PLoS ONE. 2016;11(11):e0166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