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케이팝 한 곡이면 충분하죠.
엄마로 살아가다 보면 이상하게 늘 ‘나중에’가 많아진다.
‘나중에 좀 한가해지면 운동해야지,’
‘나중에 애들이 좀 크면 피부 관리도 받아야지,’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그러다 어느 날, 거울 속 얼굴을 보는데 ‘나중’이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제야 슬그머니, 뭔가를 다시 해보고 싶어진다.
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건 아이들이 나를 덜 찾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기 때는 내가 방에서 나가면 세 명의 작은 인간들이
“엄마~ 엄마, 어디가~~ 엄마~!!”
하고, 마치 병원에서 ‘코드블루, 코드블루’ CPR(심폐소생술) 방송이 나올 때처럼 거의 응급상황인양 울부짖었다. 큰일 보다가도 끊고 뛰쳐나가야 했던 날들. 그 시절엔 운동이고 뭐고 그냥 ‘물 마시는 시간’만 생겨도 감지덕지였다. 심지어 물만 마셔도 아이들이 달려들어 엄마 뭐 먹었냐고 입 벌리고 검사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엄마’도 겨우 나만의 짧은 시간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케이팝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저녁 케이팝 댄스반의 최고령자, 접니다.^^ (물론 선생님은 저를 볼 때마다 존칭을 쓰기 시작했어요... 마음 아픔 주의)
처음에는 뻣뻣한 몸이 민망하고 아무리 해도 팔과 다리가 따로 놀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수업쯤 되자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는 거다. 춤추는 동안에는 ‘엄마 모드’, ‘의사 모드’, ‘경영자 모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비트에 몸을 맡기고, 가끔은 내가 예전에 그렇게 동경하던 ‘효리 언니’가 된 것처럼 무대에 오른 착각까지 한다. (주책 맞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만의 세계관 속에서 엄청 만족한다.) 춤추는 그 시간이 나만을 위한 시간, 원장도 엄마도 아닌 내 안에 있던 어떤 '여자 사람 나'를 다시 꺼내주는 시간이었다.
사실 이제 클럽에 갈 수도 없고(물론 젊었을때도 별로 가본적은 없다. 더더군다나 지금은 외모도, 나이도… 슬프지만 인정), 살면서 도파민이 터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춤추면서 터지더라. 연구에서도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면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고¹,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낮아진다고 보고돼 있다². 나는 이걸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화요일, 목요일이 야간진료라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을 병원에 매여 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케이팝 수업도 화요일, 목요일이다. 덕분에 힘든 날이지만 춤추는 생각을 하면 그날을 버틸 힘이 생기고, 야간진료도 그리 미워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고된 평일의 한가운데지만, 내겐 도파민이 터지는 날이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론 병원까지 일부러 걸어서 출퇴근한다. 걸어서 15분. 날씨 좋은 날은 햇살이 뺨을 스치고 비 오는 날은 우산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걸으며 정리되는 생각들, 걷는 것만으로도 풀리는 뻐근함. 그 시간이 내겐 작은 ‘정신과 진료실’ 같은 느낌이다.
운동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 속에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진짜 자기 돌봄이다.
예전엔 자가용으로 출퇴근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 짧은 시간이 혼자 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차 안 노래방이었다. 창문은 닫고, 볼륨은 올리고
"내가 제일 잘나가~"부터
"사랑은 늘 도망가~"까지
그날의 감정에 맞는 선곡으로 속 시원하게 한 곡 때리면 의외로 그게 가장 효과 좋은 스트레스 해소였다.
그렇게 조금씩, 짬짬이 숨통을 틔우며 내 몸도, 내 마음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말한다.
"엄마도 운동해야죠, 스트레스 풀어야죠."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지 엄마들은 안다. 그러니까 꼭 말해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까지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 남을 먼저 돌보며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이제야 깨닫는다. 다이어트보다 중요한 건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을 빼는 것'. 케이팝이든 걷기든, 차 안 3분 노래방이든 그 짧은 시간들이 결국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든다. 몸도, 마음도, 내가 ‘다시 나로 회복되는 시간’. 그것이 진짜 자기 돌봄의 시작이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니 마음도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제는 좀 더 내 몸을 아껴줘야겠는걸?’
‘진짜로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 마음이, 나를 다시 ‘건강한 다이어트’라는 길 위에 세워줬다. 예전처럼 남들한테 보여지는날씬한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좋아하기 위해서.
『“살을 빼기 전에, 나를 위한 시간을 먼저 빼내야 해요.”
“춤추는 동안만큼은 ‘의사’도 ‘엄마’도 아닌, 그냥 ‘나’였어요.”
“운동은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출근길 15분 걷기도 충분해요.”
“자기 돌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에요.”』
각주
1) Salimpoor VN, et al. Anatomically distinct dopamine release during anticipation and experience of peak emotion to music. Nat Neurosci. 2011;14(2):257–262.
2) Quiroga Murcia C, et al. Shall we dance? An exploration of the perceived benefits of dancing on well-being. Arts Health. 2010;2(2):149–163.
3) Chanda ML, Levitin DJ. The neurochemistry of music. Trends Cogn Sci. 2013;17(4):179–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