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 요요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살을 빼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를 되찾고 싶었던 거였다.

by 김보민

나는 진심으로 믿었다. 출산만 하면, 모유수유만 하면,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거라고. 하지만 현실은 참 덤덤했다. 몸에서는 아기 몸무게만큼만 빠져나갔고, 그 이후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옷장은 여전히 임부복으로 가득했고, 출산 6개월이 지나도록 그 옷을 입고 다니는 나 자신이 낯설고, 또 서러웠다.

“모유수유 하면 살 빠진다더니, 나는 왜 이럴까?”

“내 몸이 뭔가 잘못된 걸까?”

자책의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공의를 마친 뒤 의사로서의 모든 일을 그만두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던 시절의 나는 ‘몸이 무거운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진 사람’이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끝이 없는 집안일, 퇴근이 없는 육아, 내가 다시 의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그때 나는 진심으로 지쳐 있었다. 살이 쪄서가 아니라, 내 삶이 너무 무거워서.

그러던 어느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 셋을 돌보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앉았던 그 순간. 남편이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너 보면 얼굴에 생기가 없고 너무 칙칙해서… 나도 같이 우울해져. 집에 들어오기 싫을 정도야.”

평소 같았으면, “그래, 나도 요즘 좀 그래.” 하며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 말이 내 가슴을 내리꽂았다. 마치 내가 우울함을 퍼뜨리는 바이러스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너무 절망스러웠다.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대신 허공을 바라봤다. 무언가가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내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거울을 보기가 두려웠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나’ 같지 않았다. 의사로서의 나, 여자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 그 모든 역할 속에서 정작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너무 우울하고 나를 잃어버렸을 땐, 가까운 사람의 말조차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건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째 출산 후 전공의 복귀는 또 다른 전쟁이었다. 밤새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며 몸이 부서질 듯 아팠고, 머리는 멍해서 오더조차 헷갈렸다. 그날 새벽,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 진짜 바보 된 거 아닐까...’

하면서 훌쩍였다.


그때의 나는 지쳐 있었고, 무너져 있었고, 그래서 다이어트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살을 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짜 어려운 건 그 상태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잠이 부족하고, 생리 전 폭발하는 식욕. 초코파이 하나로 시작된 군것질은 금세 “다시 찐 내 몸”을 데려왔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싫어졌다.

‘왜 나는 항상 실패할까?’

‘왜 이렇게 약할까?’

그렇게 자책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아주 단순한 생각이 스쳤다.

“이게 정말 살이 문제일까? 아니면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그런 걸까?”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다이어트를 망치는 건 ‘먹는 양’이 아니라 지치는 마음이었다는 걸. 요요의 원인은 탄수화물이 아니라 감정과 습관, 그리고 버텨야만 하는 일상 속에 있었다는 걸.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건강했던 시기는 가장 나답게 살던 시기였다. 누군가를 돌보느라 나를 뒤로 미루지 않았던 때. 식사를 챙기고, 잠을 자고,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때.

그래서 이번엔

“살 빼야지!”가 아니라

“나를 다시 챙겨야지.”

그렇게 마음먹었다. 체중계 위 숫자보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기. 식단표보다 내 기분과 생활의 리듬을 관찰하기. 다이어트는 살을 빼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다시 이해하고, 돌보는 연습이었다.


『요요는 살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졌을 때 시작된다.』

『이번엔 몸무게보다 내 감정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다이어트는 단식보다 관계 회복이 먼저다. — 나와의 관계 말이에요.』

keyword
이전 08화조금씩 회복 중입니다. 몸도, 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