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단맛을 부르고, 단맛은 죄책감을 부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단 걸 정말 좋아했다. 달콤한 빵, 폭신한 떡, 쫄깃한 면, 바삭한 과자. 누가 “스트레스 받을 땐 단 게 최고야”라고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기운이 쭉 빠지는 날엔 항상 그 아이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환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고 온 어느 날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니, 애 셋이 집안을 뒤엎고 싸우고 있었고, 설거지거리는 산더미 같았고, 바닥에는 레고 조각들이 덫처럼 깔려 있었다. 거기에 내 두 팔과 다리에는
“엄마, 내 편 들어줘!”
하며 매달린 세 아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몸은 천근만근인데, 내일은 도시락을 세 개나 싸야 하는 날이었고 도시락 거리가 없어서 그 늦은 밤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가야 했다. 그날 밤,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베스킨라빈스 쿼터 아이스크림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럴 땐 아이스크림조차 천사처럼 빛나 보인다...) 정신 차려보니 밥숟가락을 손에 쥐고 있었고, 쿼터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심지어 또 다른 통을 열고 있었다.
입은 “달다…”라고 말했지만, 속은 “그만 먹자…”라고 울부짖었고, 손은 “계속 가자!”라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아주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었다. 마음이 고파서, 숨 쉴 틈이 없어서, 위로가 필요해서 먹고 또 먹고 있었다. 결국 속이 뒤집히고, 머리까지 욱신거릴 정도로 먹다가 토하고 말았다. 울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내가 나를 이렇게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걸까?”
“왜 음식 앞에서 제어가 안 될까?”
“이건 정말 내가 의지력이 없어서일까?”
나는 내과 의사다. 혈당, 인슐린, 도파민, 세로토닌, 렙틴과 그렐린의 역할까지 다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전히 과자 봉지를 뜯는다. 지식으로는 제어되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그건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호르몬이 먼저 반응하는 뇌의 회로였다.
**감정과 식욕의 연결고리**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먼저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빠르게 확보하려는 신호를 보낸다. 그 결과, 우리는 본능적으로 탄수화물과 단맛을 찾는다¹. 단 음식은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켜 일시적인 쾌감을 주고, 그 쾌감이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해준다². 그래서 힘들 때 달콤한 걸 찾는 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한 응급 위로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코르티솔은 렙틴(leptin) - 포만감을 전달하는 호르몬의 작용을 둔화시키고, 그렐린(ghrelin) - 배고픔을 유발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늘린다³. 그래서 스트레스가 지속될수록 “배고프지 않은데 먹고 싶다”는 기묘한 감각이 생긴다. 이건 게으름도, 의지 부족도 아니다. 몸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너무 인간적인 방식이다.
게다가 단 음식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증가해 기분이 잠시 안정된다⁴. 문제는, 그 평화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혈당이 급상승했다가 급격히 떨어지면 다시 불안과 허기가 몰려오고, 그때마다 우리는 같은 위로를 찾게 된다.
결국, “스트레스 → 단맛 → 죄책감 → 다시 스트레스”의 순환 고리에 갇힌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반응하려고 한다. 그럴 때면 잠깐 나가 걷는다.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지금은 엄마가 10분만 혼자 있을게.”
물론, 여전히 과자는 집에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거든요. 정말이에요. 저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걸 감정의 반사 신경으로 먹지 않는다. 그 순간 내 안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다.
“너 지금 뭐가 그렇게 힘들어?”
“왜 또 혼자 다 하려 해?”
“왜 너는 항상 제일 마지막이야?”
그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진짜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감정이 허기질 때, 위는 대신 울어준다.』
『식욕은 배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마음에서 시작된다.』
『무너질 때마다 음식에 기대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익숙한 위로 방식일 뿐이다.』
『먹기 전에 “왜 먹고 싶은지”를 한 번만 물어보세요.』
각주
1. Epel ES et al., Stress may add bite to appetite in women: A laboratory study of stress-induced cortisol and eating behavior, Psychoneuroendocrinology, 2001.
2. Volkow ND et al., Dopamine and food reward: The involvement of the dopamine system in the reinforcing properties of food and obesity, Obesity Reviews, 2011.
3. Torres SJ, Nowson CA., Relationship between stress, eating behavior, and obesity, Nutrition, 2007.
4. Wurtman RJ et al., Carbohydrate craving, mood changes, and obesity, 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