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보다 중요한 건 나의 ‘리듬’이었다
“선생님, 저는 진짜 많이 안 먹거든요? 그런데 왜 살이 안 빠져요?”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중 하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그랬어요. 아니, 지금도 가끔 그래요…”
나도 한때는 샐러드, 닭가슴살, 오트밀, 고구마, 아몬드... 건강한 음식 리스트는 완벽히 외웠다. 냉장고엔 다이어트 도시락이 빼곡했고, 식단표엔 칼로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은 안 빠지고 속은 더부룩하고, 배는 금방 고팠다.
왜일까?
답은 단순했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하루는 이랬다.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 커피 한 잔으로 넘기기
점심: 진료 사이 10분 만에 허겁지겁
저녁: 아이들 재우고 나서야 겨우 식사
밤: 결국 남은 간식이나 맥주 한 잔
몸은 하루 종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결국 밤에 폭발했다.
게다가 “좋은 음식만 먹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안도감에 양이나 타이밍 조절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트밀도, 고구마도 밤 10시에 배부르게 먹으면 살은 안 빠진다. (슬프지만 과학적 진실이다.)
몸은 ‘리듬’을 기억한다. 우리의 위장과 간, 인슐린 분비는 모두 **생체시계(circadian rhythm)**¹에 따라 조절된다. 아침에는 인슐린 감수성이 높고, 밤에는 낮아진다². 즉, 같은 음식이라도 아침에 먹으면 혈당이 덜 오르고, 밤에 먹으면 더 오르는 이유다. 그 리듬을 무시한 채 “좋은 음식만 먹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몸은 금세 균형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음식’보다 ‘식사 시간’을 먼저 고치기로 했다.
아침: 최소한 삶은 계란 하나라도
점심: 진료 중이라도 단백질 + 채소는 꼭
저녁: 7시 이전에, 너무 무겁지 않게
밤: 아이 간식 안 먹고 따뜻한 물로 입 닫기
처음엔 쉽지 않았다.
일하는 엄마에게 ‘시간을 지킨다’는 건, 거의 사치에 가깝다. 아이 밥 챙기고, 환자 보고, 병원 일 마치고 나면, 나 자신은 늘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식단이나 운동 루틴을 지키지 못하면 “이번에도 망했네…” 하고 자포자기한 날도 많았다. 그렇게 마음이 지치면, 몸은 더 쉽게 무너진다.
“망한 김에 먹고 싶은 거 먹자, 누워 있자” — 나도 그랬으니까 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여유가 없었던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틈새의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환자 기다리는 3분 동안 스트레칭,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오르기, 청소하면서 스쿼트 자세로 앉기.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바로 **NEAT(Non-Exercise Activity Thermogenesis)**³, 즉 비운동성 활동 대사다. 별것 아닌 움직임처럼 보여도, 하루 종일 쌓이면 하루 에너지 소비량의 15~30%를 차지한다⁴. 즉, 헬스장보다 집안일이 다이어트에 더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퍼져서 누워 있고, 몸에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먹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위로하던 나보다,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내 리듬을 회복하려 애쓰는 내가 더 좋았다. 그걸 느끼는 순간, 몸보다 먼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안다.
다이어트는 식재료의 싸움이 아니라, 리듬의 회복이다. 먹고 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식사, 나를 돌보는 리듬을 되찾는 일. 그게 비로소 몸과 마음을 함께 지키는 다이어트의 시작이었다.
“야식은 식욕이 아니라, 낮 동안 나를 못 챙긴 대가다.”
“제일 먼저 바꿔야 할 건 냉장고보다 식사 시간표다.”
“배고픈 다이어트는 실패하고, 리듬 있는 식사는 유지된다.”
**각주**
1. Circadian rhythm (생체시계) — 우리 몸의 호르몬, 대사, 체온, 소화기능은 약 24시간 주기로 조절된다. 밤늦은 식사는 이 리듬을 깨뜨려 인슐린 저항성과 지방 축적을 촉진한다.
→ Czeisler CA. Science. 1999;284(5423):2177–2181.
2. 인슐린 감수성의 시간 차이 — 동일한 식단이라도 저녁보다는 아침 식사 시 혈당 반응이 낮다.
→ Morris CJ et al. Proc Natl Acad Sci USA. 2015;112(17):5123–5128.
3. NEAT (비운동성 활동 대사) — 정규 운동 외의 모든 신체 활동으로, 일상적 움직임(청소, 계단 오르기, 통화 중 걷기 등)이 포함된다.
→ Levine JA. Am J Clin Nutr. 2002;76(4):720–725.
4. NEAT의 에너지 소비 비율 — 개인의 체형과 활동 수준에 따라 하루 총 에너지 소비량의 15~30%를 차지할 수 있음.
→ Levine JA. Mayo Clin Proc. 2009;84(8):71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