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케이 팝을?” 그래도 나는 춤춘다
예전엔 몰랐다.
‘나는 왜 밤만 되면 냉장고 앞을 서성이는가?’
처음엔 단순히 배가 고픈 줄 알았다.
아니지, 아이 셋 키우고, 병원 운영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휴일도 없이 진료 보고 어깨에 물이 차도록 내시경하고 나면 — 세상의 모든 탄수화물을 먹을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꾸 이상한 일이 생겼다.
▶ 초콜릿을 한 입 먹었는데도,
▶ 단팥빵을 뜯고 또 뜯고 있었고,
▶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째 퍼먹으며 “이걸 왜 먹고 있지?” 생각하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진료실에서 복잡한 환자 케이스로 스트레스를 받은 날, 퇴근하자마자 집에 오니 애 셋이 싸우고 있었다. 큰 애는 소리 지르고, 둘째는 울고, 막내는 고자질하고… 나는 그 사이를 뚫고 내일 도시락 재료를 사러 마트를 가야 했고, 현관 앞에서 아이 셋이 팔·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냉장고 속 베스킨라빈스 쿼터 아이스크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에서 나를 이해해줄 유일한 존재.’
무념무상의 상태로 퍼먹기 시작했다. 너무 달아서 머리가 띵하고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도 속은 허전했다. 그래서… 옆에 있던 한 통을 더 뜯었다. 거울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건 배가 고픈 게 아니구나.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허기가 진 거구나.”
그날 밤, 후회했고, 다음날 아침 내시경 중 배가 꾸르륵거려 화장실로 뛰어나갔던 건 덤이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음식 말고 나를 풀어줄 출구가 있을까?”
처음엔 헬스장 PT를 끊었다. 돈을 내면 내 성격상 억지로라도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알았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솔직히, PT 시간 미루기 위해 “오늘은 진료가 늦게 끝나서... 내일은 내시경이 많아서...” 하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나를 보고 깨달았다.)
다음엔 필라테스. 등록만 하고 한 달 내내 ‘출석은 마음속으로’ 했다. 한 번은 너무 피곤해서 기계 위에서 잠깐 잠들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 눈빛은 “이건 운동이 아니라 낮잠이에요…”
아, 이것도 내 길이 아니구나... 그제야 웃음이 났다.
그러다 병원 앞을 지나다 우연히 본 케이팝 댄스 학원.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다.
첫 수업 날, 내 옆에 있던 학생에게 몇 살이냐 물었더니 “중1이요”라고 했다. (참고로 우리 큰아들은 고2다...)
그날의 안무는 하트 투 하츠의 〈더 체이스〉. 가수도 모르고, 노래도 첨 듣고, 안무는 반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고 비트는 빠르고, 동작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엔 순서를 외우는 것조차 버거웠고, 그걸 머리로 익히고 나서 몸으로 바로 옮기려면 온 신경을 써야 했다. 딴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한 시간은 숨 가쁘게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내 뇌는 “한계 작업 모드”로 진입한 듯했다. 리듬을 타고, 동작을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면서 일종의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가 걸리는 상태였다. 이런 부하 상태에서 뇌는 새롭고 복합적인 연결을 만들어내고, 뉴런 간의 시냅스를 강화하며, 뇌 회로를 더 복잡하게 조직한다는 연구들이 있다¹⁾.
사실, 댄스는 단순한 운동 범주를 넘어선다. 리듬, 음악, 동작 순서, 공간 감각, 감정 표현 등이 동시에 요구되며, 이러한 복합 과정을 통해 기억력, 주의력, 유연한 사고가 자극된다²⁾. 일부 연구는 댄스 개입이 **전반적인 인지 기능 및 기억(즉시 기억, 지연 기억 등)**을 개선할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³⁾.
즉, 내가 느낀 것처럼
“머리로 익힌 안무를 빠른 비트에 몸으로 옮기기” — 이 과정이 단순히 ‘움직임’만이 아니라 뇌의 회로를 재조직하는 훈련이 되는 셈이다.
아이 셋의 엄마이자 의사로 산다는 건, 늘 **‘멀티태스킹의 전장’**에 있는 일이다. 진료 중에도 아이 숙제 알림이 울리고, 아이 상담을 들으며도 환자 결과지를 떠올린다. 머릿속은 늘 열려 있지만, 정작 집중력은 닫혀 있는 느낌. 그런데 신기하게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진료할 때 환자의 작은 단서가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이름도 덜 까먹고, 피곤할 때도 머리가 덜 멍했다. 처음엔 ‘이건 플라시보 효과일까?’ 싶었는데, 실제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결국, 운동은 단순히 살을 빼는 행위가 아니다. 그건 **“뇌의 회로를 다시 세팅하는 리부팅 버튼”**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케이팝 댄스가 내 유일한 ‘무브먼트 타임’이다. 물론 막내는 여전히 말한다.
“엄마, 제발 집에서는 추지 마... 안 본 눈 삽니다...”
그래도 나는 춤춘다. 이 나이에, 이 직업에, 이 스케줄에 — 이만큼이라도 내 몸이 살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이젠 안다. 움직이면 식욕이 달라지고, 몸이 깨어나면 감정이 깨어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감정이 깨어나면 우리는 더 이상 냉장고 앞에서 허한 마음을 퍼먹지 않게 된다.
『“스트레스를 못 풀면, 결국 배를 채운다.”
“감정은 움직일 출구가 필요하다. 음식이 아니라, 움직임으로.”
“케이팝 댄스가 다이어트보다 좋은 건, 웃게 해준다는 것.”
“엄마의 운동은 체중보다 자존감을 바꾼다.”
“당 떨어질 때 당 먹지 마세요. 그냥 몸을 흔들어보세요.”』
** 각주
1. 인지적 부하와 뉴런 연결 강화 — 댄스와 안무 학습은 복합적인 인지 과정을 동원하여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하고, 뇌 신경망의 재조직화(neural reorganization)를 촉진한다. The cognitive neuroscience and neurocognitive rehabilitation of dance, BMC Neurosci. 2024 Nov 6;25:58. doi: 10.1186/s12868-024-00906-8
2. 댄스 특유의 복합 인지 자극 — 댄스는 동작, 리듬, 음악, 감정 표현 등을 통합하여 주의력, 기억, 유연한 사고 등 다양한 인지 기능을 자극한다. The cognitive neuroscience and neurocognitive rehabilitation of dance, Madeleine Eve Hackney, Agnieszka Zofia Burzynska & Lena H. Ting BMC Neuroscience volume 25, Article number: 58 (2024)
3. 댄스 개입과 기억력 개선 가능성 — 메타분석 연구들에서는 댄스 개입이 즉시 기억, 지연 기억, 전반적 인지 기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Effects of Dance Interventions on Cognition, Psycho-Behavioral Symptoms, Motor Functions, and Quality of Life in Older Adult Patients With Mild Cognitive Impairment: A Meta-Analysis and Systematic Review, Front. Aging Neurosci., 20 September 2021 Sec. Neurocognitive Aging and Behavior